
반삼위일체 재림교인은 삼위일체 교리를 가톨릭 교회가 역사 속에서 체계화한 비성경적 교리로 받아들인다. 반삼위일체론은 삼위일체가 아버지 하나님의 유일성과 절대적 주권을 훼손하고,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이해하는 성경적 개념을 왜곡함으로써,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본질을 흐리게 만든다고 말한다.
만약 이처럼 중대한 오류가 재림교회 신앙 안에 실제로 자리 잡고 있다면, 그것은 성경의 예언 속에서 반드시 지적되거나 암시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더욱이 재림교회가 거짓 교리를 상징하는 바벨론, 곧 타락한 개신교 체계로부터 나와야 할 하나님의 남은 무리라면,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에 관한 이처럼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교리가 성경 안에서 분명히 언급되고 경고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은 삼위일체의 교리적 논쟁을 다니엘서 예언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글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혼란과 진리의 어둠속에 가궈두시지 않았다. 우리는 성경과 예언을 통해 명확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 다니엘서 12장 6-12절을 통해 알아보자.
[6] 하나가 아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던 사람에게 이르되, 얼마나 있어야 이 이적들의 끝이 이르겠느냐? 하매.
[7] 내가 들었는데 아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던 사람이 자기의 오른손과 왼손을 하늘을 향해 올리고 영원토록 사시는 이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되, 그것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에 관한 것이니 그가 거룩한 백성의 권세를 흩어 놓는 일을 이루게 될 때에 이 모든 일이 끝나리라 하더라.
[8]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하였으므로 그때에 이르되, 오 내 주여, 이 일들의 끝이 어떠하겠나이까? 하매.
[9]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네 길로 가라. 주께서 끝이 임하는 때까지 그 말씀들을 닫아 두고 봉인하셨느니라.
[10] 많은 사람이 정결하게 되고 희게 되며 단련을 받을 터이나 사악한 자들은 사악하게 행하리니 사악한 자들 중에서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지혜로운 자들은 깨달으리라.
[11] 날마다 드리는 희생물을 제거하며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우는 때로부터 천이백구십 일이 있으리라.
[12]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러나 너는 끝이 이를 때까지 네 길로 가라. 네가 안식하다가 그 날들의 끝에 네 몫으로 정한 곳에 서리라. — {다니엘서 12:6-12}
다니엘서 12장에는 세가지 예언이 등장한다.
[1]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1260일)
[2] 천이백구십 일 (1290일)
[3] 천삼백삼십오일 (1335일)
제칠일안식일재림교회는 성경에서 하루를 일 년으로 해석하는 원칙(민수기 14:34, 에스겔 4:6)에 따라, 다니엘서의 세 가지 예언적 기간을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1] 538년(교황권이 등장한 시점)부터 1260년 후인 1798년(나폴레옹에 의해 교황권이 붕괴된 사건)
[2] 508년(아리안 국가들이 패배한 해)부터 1290년 후인 1798년
[3] 508년을 기점으로 1335년을 더한 1843년 (예수께서 최고성소 사역에 들어가신 시점)
다시 다니엘서 12장 11절을 자세히 살펴보자.
[11] "날마다 드리는 희생물을 제거하며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우는 때로부터 천이백구십 일이 있으리라. " — {다니엘서 12:11}
1290일 예언이 시작되는 해 (508년)에는
[1] “날마다 드리는 희생물 (Daily sacrifice)”를 제거하며 (take away),
[2]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 (abomination that maketh desolate)”을 세우는 (set up) 때이다.
이 동일한 예언적 표현은 다니엘서 11장 31절에도 반복된다
"군사 (zuhroheem)들은 그의 편에 서서 견고한 성소를 더럽히며 날마다 드리는 희생물을 제거하고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두리라." - {다니엘서 11:31} *여기서 군사들 (zuhroheem)은 공격하는 군대, 즉 외부에서 침입하는 세력을 의미한다.
같은 내용은 다니엘서 8장 12절에서도 다시 나타난다.
"또 범죄로 인하여 그분께서 한 군대 (tsahvah)를 그에게 주사 날마다 드리는 희생물을 반대하게 하매 그것이 진리를 땅에 내던지고 마음대로 행하며 형통하였더라." - {다니엘서 8:12} *여기서 군대 (tsahvah)는 공격을 받는 군대, 곧 피해를 입는 쪽을 가리킨다.
이처럼 동일한 예언이 다니엘서에서 세 차례 반복되어 등장한다는 사실은, 이 사건이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예언적 전환점임을 시사한다. 곧 전쟁과 군사적 힘을 통해 ‘날마다 드리는 희생물’이 제거되고,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세워지는 역사적 사건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답은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508년은 프랑크족 (훗날의 프랑스)와 서고트족 사이의 전쟁이 종결된 해이다.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 1세는 기존의 게르만 왕들과 달리 아리우스파가 아닌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한 최초의 게르만 군주였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당시 서유럽의 대부분 게르만 왕국들 (서고트족, 동고트족, 반달족, 게피드족)은 이미 기독교를 받아들였지만, 로마 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아리우스파 기독교를 신앙하고 있었다.
클로비스의 개종은 단순한 개인적 신앙 변화가 아니라, 로마 가톨릭 교회와 프랑크 왕권이 정치·군사적으로 결합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이로 인해 프랑크족의 전쟁은 더 이상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라, 가톨릭을 대변하는 세력이 아리우스파 기독교 국가들을 ‘정복하고 제거하는’ 종교적 성격을 띠게 된다. 508년에 서고트족이 패배하고 이베리아 반도로 밀려난 사건은, 그 첫 번째이자 상징적인 사례였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가톨릭 교회는 군사력을 가진 세속 권력의 보호자이자 정당화 주체가 되었고, 반대로 아리우스파 국가들은 체계적으로 약화·소멸되는 길로 들어섰다. 훗날 반달족과 동고트족까지 차례로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는 흐름은, 이미 이때 방향이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508년은 다니엘서에서 말하는 “군사로 말미암아” 어떤 신앙 체계가 제거되고, 다른 종교적 권위가 세워지는 전환점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교리 논쟁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역사 속에서 신앙·권력·전쟁이 결합된 결정적 분기점이었으며, 이후 교황권이 서유럽에서 종교적·정치적 우위를 점하게 되는 토대를 마련한 해였다.
아래는 역사학자들이 508년을 두고 언급한 내용이다.
“유럽에서 그 해의 주요 사건 가운데 하나는, 프랑크족(훗날의 프랑스)의 왕 클로비스와 서고트족 사이의 전쟁이 종결된 것이었다. 그는 서고트족을 격파하고 그들을 스페인으로 몰아냈다.” — {William H. Shea, Bible Amplifier - Daniel 7-12, p. 220}
“서고트족은 민족 전체로서 처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였고, 그 뒤를 이어 동고트족이 따랐다. 또한 반달족과 게피드족도 4세기 동안 개종하였다. 5세기 말에 이르러 프랑크족이 개종하였다… 이 마지막 경우를 제외하면, 이 모든 민족들은 아리우스파 기독교의 정복 대상이었거나 신앙의 초기 단계에서 그것을 받아들였다.” — {Milman, History of Latin Christianity, p. 343}
“프랑스 남부는 아리우스파 군주들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다. 클로비스는 이교도였으며, 당시 약 4,000명의 프랑크 전사들을 거느린 족장에 불과했지만, 모험심이 강하고 한없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의 개종은, 만일 그것이 인류에게 그토록 심대한 결과를 낳지 않았다면, 사소하고 우연적인 사건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 {Milman, History of Latin Christianity, p. 350}
“클로비스의 개종으로 인해, 로마 주교가 교회의 충실한 아들로서 협상할 수 있는 최소한 한 명의 야만족 지도자가 등장하게 되었다. 클로비스와 그의 후계자들에 대한 우리의 지식 대부분은 정통 신앙을 가진 투르의 그레고리에게서 나온다. 그레고리의 유명한 『프랑크인의 역사』에서 이 잔혹하고 비양심적인 왕은 가톨릭 신앙 확장의 도구로 선택된 하나님의 도구로 나타난다. 클로비스는 곧 자신의 이익을 교회의 이익과 결합하는 법을 배웠으며, 교황과 프랑크 왕들 사이의 동맹은 서유럽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 {James Harvey Robinson, An Introduction to the History of Western Europe, 1902 ed., pp. 35, 36}
“투르의 그레고리의 언어로 미루어 볼 때, 프랑크족과 서고트족 사이의 이 갈등은 그의 시대와 그 이전 세대의 정통파에 의해 종교 전쟁으로 간주되었으며,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서유럽에서 가톨릭 신앙이냐 아리우스 신앙이냐의 우세가 이 전쟁에 달려 있었다.” — {Walter Copland Perry, The Franks, from their first appearance in history to the death of King Pepin, p. 85}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신앙의 확산이, 처음으로 인접한 영토를 침공하는 데 있어 공개적으로 내세워진 명분이 되었다.” — {Henry Hart Milman, History of Latin Christianity, p. 353}
“승리한 프랑크족은 그들을 보르도까지 추격하였고, 클로비스는 그곳에서 겨울을 보냈다. 한편 그의 아들 테오데릭은 오베르뉴, 퀸시, 루베르뉴를 휩쓸고 있었다. 새 왕이 미성년자였던 고트족은 더 이상의 저항을 하지 않았으며(507), 이듬해(508)에 살리안족의 지도자는 툴루즈에 있던 왕실 보물을 차지하였다. 그는 또한 앙굴렘 시를 점령하였다.” — {Walter C. Perry, The Franks, p. 87}
“이것은 일시적인 정복이 아니었다. 서고트족과 부르군트족의 왕국은 프랑크족의 왕국이 되었다. 마침내 정착할 침략자들이 도래한 것이다. 갈리아와 게르마니아의 미래 운명을 이끌 자는 고트족이 아니라 프랑크족이며, 아리우스주의가 아니라 가톨릭 신앙이 이 위대한 영역들의 종교가 될 것이라는 점이 결정되었다.” — {Richard W. Church, The Beginning of the Middle Ages, pp. 38, 39}
“이리하여 서기 508년, 교황권의 발전에 맞선 연합 저항은 종결되었다. 프랑크와 고트 사이의, 곧 가톨릭과 아리우스 종교 사이의 패권 문제는 이때 가톨릭의 승리로 결정되었다.” — {Uriah Smith, Daniel and the Revelation, 1944, p. 330}
“따라서 클로비스와 프랑크족이 아리우스파 서고트족을 격파하고 그들을 스페인으로 몰아냈을 때, 그것은 로마 주교에게도 신학적 승리였다.” — {William H. Shea, Bible Amplifier -Daniel 7-1 2, p. 220}
“이렇게 하여 클로비스의 피비린내 나는 행로는 가톨릭 저술가들에 의해, 아리우스주의에 대한 삼위일체 정통 교리의 승리로 미화되었다.” — {A. T. Jones, The Two Republics, p. 528}
위의 증언들을 종합해 보면, 508년은 단순한 정치·군사 충돌이 아니라 아리우스주의와 로마 가톨릭 사이의 ‘종교적·신학적 전쟁’이 본격화된 전환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역사적 흐름은 다니엘서 7장의 예언과 정확히 맞물린다.
[8] 내가 그 뿔들을 깊이 살펴보는데, 보라, 다른 작은 뿔이 그것의 가운데서 나오더니 처음의 뿔들 가운데 셋이 그것 앞에서 뿌리째 뽑히더라. 또, 보라, 이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들이 있고 또 큰일들을 말하는 한 입이 있더라.
[20] 내가 그의 머리에 있던 열 뿔과 또 솟아 난 다른 뿔에 대한 진실을 알고자 하였는데 그것 앞에서 세 개가 넘어졌더라. 그 뿔에는 눈들도 있고 심히 큰일들을 말하는 입도 있더라. 그것의 모습이 그의 동료들보다 더 견고하더라.
[21] 내가 보니 바로 그 뿔이 성도들과 싸워 그들을 이겼으나
[22] 마침내 옛적부터 계신 이가 오셔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에게 심판을 주셨으므로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그 왕국을 소유하였더라.
[23] 그가 이같이 이르되, 넷째 짐승은 땅 위에서 넷째 왕국이 될 터인데 이 왕국은 모든 왕국과 달라서 온 땅을 삼키고 짓밟아 산산조각 낼 것이요,
[24] 또 이 왕국에서 나온 열 뿔은 앞으로 일어날 열 왕이요, 그들 뒤에 다른 왕이 일어날 터인데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정복하리라. — {다니엘서 7:8, 20-24}
다니엘서 7장 8절과 20–24절에 따르면, 네 번째 짐승인 로마 제국의 머리에는 열 뿔(서로마 붕괴 후 등장한 10개의 게르만 왕국들)이 있으며, 그 가운데서 작은 뿔(little horn)이 일어나면서 기존의 세 뿔을 뽑아낸다고 예언되어 있다. 성경 자체가 뿔을 왕 또는 왕국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단 7:24), 이는 실제 역사 속에서 세 개의 왕국이 제거될 것을 의미한다.
제칠일안식일재림교회는 이 작은 뿔을 교황권(Papacy)으로 이해한다. 교황권은 스스로 군대를 소유한 정치국가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인 세속 권력과 결합함으로써 자신의 신학적·종교적 권위를 위협하던 세 왕국을 역사 속에서 제거하게 된다. 그 결과로 멸망한 세 왕국이 바로 아리우스파 기독교를 신앙하던 헤룰리족, 반달족, 동고트족이다.
이 세 왕국의 제거는 우연한 사건들의 나열이 아니라, 가톨릭 교리를 중심으로 한 종교 질서가 군사력에 의해 확립되는 과정이었다. 특히 508년 프랑크 왕 클로비스의 가톨릭 개종은 이 흐름의 기점이 되었고, 이후 아리우스파 왕국들은 ‘정복의 대상’이 되었다. 교황권은 서유럽에서 종교적·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토대를 완전히 확보하게 된다.
따라서 다니엘서 7장에서 말하는 “작은 뿔이 세 뿔을 뽑아낸다”는 예언은, 교황권이 가톨릭과 결합한 정치 권력을 통해 아리우스파 세 왕국을 제거하고 역사 무대의 중심에 서게 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그러나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381년 이후 삼위일체 신조는 로마 가톨릭 안에서 정통과 이단을 가르는 핵심 기준이 되었다. 로마 교회는 삼위일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을 일괄적으로 아리우스파라 규정했다. 그러나 당시 이른바 아리우스파로 불린 기독교인들 다수는 ‘아리우스주의’라는 체계적 교리를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해 하나님 아버지는 유일한 하나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begotten)라는 믿음을 고수했을 뿐이었다.
아리우스의 저작들이 교황청에 의해 소각되었기 때문에, 아리우스가 무엇을 어떻게 믿었는지를 오늘날 정확히 재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아리우스는 ‘낳아짐(begotten)’과 ‘창조됨(created)’을 엄격히 구별했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 유일하게 낳아진 분이라는 신앙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로마 교회는 아리우스파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창조된 피조물’로 이해한다는 왜곡된 혐의를 내세워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박해의 정당화 수단으로 사용했다.
아래 증언을 통해 당시 어떠한 상황인지 알 수 있다.
“그 후 교황파는 이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는 자들을 아리우스파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자신들은 삼위일체파라는 명칭을 취하였다. 그리스도가 창조된 존재라고 믿는다는 잘못된 혐의가 아리우스파로 불린 모든 사람들에게 퍼지게 되었으며, 이는 그 혐의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 {Benjamin Wilkinson, Truth Triumphant, pp. 91,92}
“서기 508년에 이르러, ‘아리우스파’라는 명칭은 380년 2월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내린 칙령에서 정의된 ‘가톨릭’에 속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고 있었다. 그 칙령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유일한 신성을 믿는다. 동일한 위엄 아래에 있는 경건한 삼위일체를 믿는다. 우리는 이 교리를 따르는 자들에게 가톨릭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권한을 부여한다.’”
“수천 개의 교회와 반대파 교회 지도자들이 아리우스파라는 낙인을 찍혔다.” — {Benjamin Wilkinson, Truth Triumphant, p. 143}
“제국을 침입한 야만족들 가운데 대부분은 아리우스파였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들의 단순한 사고방식으로는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 {H. G. Wells, The Outline of History, pp. 515, 516}
508년은 아리우스파 국가들이 역사 속에서 무너짐으로써, 교황청이 서유럽에서 종교적·제도적 기반을 갖추기 시작한 해였다. 다니엘은 이 시점을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날마다 드리는 희생물이 제거되고,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세워지는 때”로 예언적으로 묘사하였다.
"날마다 드리는 희생물 (Daily)이 제거되고 그분의 성소가 있는 곳이 허물어졌더라.” — {다니엘서 8:11}
“견고한 성소를 더럽히며 날마다 드리는 희생물을 제거하고..” — {다니엘서 11:31}
이 예언에서 핵심은 ‘날마다 드리는 희생물’이 제거되고, 성소가 허물어지거나 더럽혀진다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서 ‘날마다 드리는 희생물’은 히브리어 타미드(tamid)에서 나온 표현이다. 주목할 점은, ‘희생물’이라는 단어 자체는 히브리 원문에 존재하지 않으며, 영어 성경 번역 과정에서 보충된 단어라는 사실이다. 원문에는 단지 ‘타미드’, 곧 ‘데일리(daily)’ 또는 ‘지속적인(continual)’이라는 표현만이 사용된다.
따라서 ‘타미드’는 특정한 제물 자체라기보다, 성소와 직접 연결된 ‘지속적인 무엇’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문맥상 이는 자연스럽게 하늘 성소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을 가리킨다는 전제 위에서 해석될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가장 합당한 해석 방법은
[1] 508년에 실제로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2] 그 사건의 핵심 쟁점이 무엇이었는지,
[3] 그 쟁점이 하늘 성소에서 중보자로서 사역하시는 그리스도의 역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차례로 살펴보는 것이다.
성경은 일관되게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하고 영원한 중보자로 증언한다.
"그 제사장들은 맹세 없이 되었으나 이분은 자기에게 말씀하신 분을 힘입어 맹세로 되셨느니라. 곧, 주께서 맹세하셨고 또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그런 것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는 더 나은 상속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참으로 그 제사장들의 수가 많은 것은 그들이 죽음으로 인해 항상 있지 못하였기 때문이로되 이 사람은 항상 계시므로 변할 수 없는 제사장 직분을 소유하시느니라. 그러므로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심을 보건대 그분은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느니라..” — {히브리서 7:21–25}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 — {디모데전서 2:5}
엘렌 화잇 역시 같은 진리를 반복해서 강조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과 하나님,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교통의 중개자이시다.” — {DA 143}
"그의 꿈에 나타난 신비한 사다리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교통의 중재자이신 예수를 표상하는 것이었다.” — {SC 19.2}
"광대한 우주의 모든 세계는 성부와 성자의 보호와 유지 사업의 덕을 보고 있다. 그리고 이 보호하는 사업은 타락한 인류를 위하여 끊임없이 실시되고 있다. 그리스도는 인류를 위하여 중보하고 계시며 보이지 않는 모든 세계의 질서도 그의 중보 사업에 의하여 유지된다." - [MYP 254]
"영원 전부터 주님은 약속의 중보자로서 유대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 간에 세상의 모든 민족이 그분을 받아들이면 축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이었다" — {1SM 247}
이처럼 성경과 증언은 예수님이 하늘 성소에서 ‘지속적으로(tamid)’ 중보하시는 분임을 분명히 한다.
다니엘서 8장 11절은 단지 성소가 더럽혀졌다고 말하지 않고, “그분의 성소가 있는 곳”이 허물어졌다고 말한다.
“…그분의 성소가 있는 곳이 허물어졌더라.” — {다니엘서 8:11}
여기서 ‘곳’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마콘(makon)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기초’, ‘토대’, ‘근거’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이다. 예수님의 중보적·대언적·제사장적 사역의 기초는 무엇인가? 성경은 그 기초를 분명히 밝힌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위대하신 대제사장, 곧 하늘들 안으로 들어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계신 줄 알므로…” — {히브리서 4:14}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라.” — {히브리서 5:5–6}
사도는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의 자격과 근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즉,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의 토대는 그분의 아들 되심이다.
이 관점에서 다니엘서 8장 11–12절은, 단순히 예배 형식이나 성소 봉사가 방해받는 사건을 넘어,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을 가능하게 하는 신학적 기초 자체가 공격받는 사건을 예고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뿔의 행위는 … 하늘 성소의 ‘기초’ 또는 ‘근거(makon)’를 무효화하는 것을 포함한다. … 이러한 행위는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군대의 왕자’(그리스도)의 지속적인 중보와 사역의 핵심을 건드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반(反)하나님적 뿔의 권세는 하늘 성소의 중보적이며 구원적인 활동, 곧 신자들을 위한 그 중보 사역의 바로 그 토대를 공격하는 것이다." - [Frank B. Holbrook, Editor Gerhard F. Hasel, "The 'Little Horn, the Heavenly Sanctuary, and the Time of the End: A Study of Daniel 8:9-14," Symposium on Daniel, Frank B. Holbrook, editor, p. 414]
508년 이후, 삼위일체 신학이 제도적·교리적으로 승리하면서, 예수님의 ‘하나님의 독생자’로서의 고유한 정체성은 점차 흐려지고, 그 결과 유일한 중보자로서의 지위 또한 구조적으로 약화되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 {마태복음 16:18}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선언하였다." — {DA 411}
"베드로가 고백한 진리는 신자의 신앙의 기초이다." — {DA 412}
그러나 로마 가톨릭은 교회의 근원과 기초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계시된 삼위일체의 진리는 신조에 표현된 교회의 살아 있는 믿음의 바로 근원에 놓여 있다.” —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Glossary}
따라서 다니엘서가 말하는 ‘날마다 드리는 희생물의 제거’와 ‘성소의 기초가 허물어짐’은, 단순한 상징이나 예배 형식의 변화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유일하고 지속적인 중보 사역을 가능하게 하는 신학적 토대가 역사 속에서 대체되는 과정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다.
508년 아리우스파 기독교의 패배는 단순한 교리 논쟁의 종결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중보자 정체성에 대한 성경적 이해가 제도적으로 밀려나고, 그와 조화를 이루지 않는 신학 체계가 자리 잡게 되는 예언적 전환점이었다.
날마다 드리는 희생물을 제거하며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우는 때로부터 천이백구십 일이 있으리라." — {Daniel 12:11}
성경에는 두 가지 유형의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등장한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말씀하신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예언적·상징적 의미를 지닌 것이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시며, 제자들에게 “황폐의 가증한 것”을 보거든 즉시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경고하셨다. 이 말씀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표식(sign)으로 성취되었다.
역사적으로 이 ‘멸망의 가증한 것’은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다가, 아무런 군사적 이유 없이 갑자기 철수한 사건 (A.D. 66)을 가리킨다. 당시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자신들의 군기(깃발)를 세운 채 물러났는데, 이 깃발은 로마의 신들과 황제를 상징하는 우상적 표식이었다. 예루살렘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이 장면을 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도시를 떠나 도피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시간을 얻게 되었다. 그 깃발과 철수 사건이 바로 예루살렘 멸망 직전에 주어진 ‘황폐의 가증한 것’이었다.
"곧 우상 숭배하는 로마의 군기 (軍旗) 가 예루살렘 성벽 밖 수 마일까지 미치는 거룩한 땅 (聖地) 에 세워질 때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도망하여 안전을 얻어야 할 것이었다." — {GC 25}
"고대 로마에서 군기는 군대의 중요한 구성 요소였다. 군기에는 독수리, 신, 황제, 늑대, 미노타우로스, 말, 멧돼지, 숫양 등 여러 상징이 담겨 있었다. 그중 독수리는 로마 군단의 상징이었다." — {출처 링크}
예수님이 말씀하신 로마의 우상식 표식이 황폐의 가증한 것이었다면,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abomination that maketh desolate)”도 같은 의미이지 않을까? 508년 당시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우상적 표식을 보고 교황청의 핍박과 암흑기를 피해 광야로 도망쳤어야 했을가?
"톨비아크 전투(약 496년)에서의 이 승리는 클로비스가 성 레미기우스에 의해 랭스에서 세례를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그는 방패 문장에 있던 세 마리의 두꺼비를 각각 양식화된 백합(프랑스어로 fleur는 꽃, lis는 백합을 뜻함), 즉 아이리스로 바꾸었다. 종교적 상징으로서 이 문양은 삼위일체를 나타내어 왔다." — {출처 링크}
"클로비스의 승리는 아리우스주의에 대한 삼위일체 정통 교리의 승리이다." — {H. H. Milman, History of Latin Christianity, p. 357}
"초대 교회가 세상 정부의 도움을 구한 것은 배교였으며 그것이 짐승, 곧 법왕권 (papacy)이 발전되는 길을 마련하였다." — {GC 443}
"아리우스주의와 정통 가톨릭주의 사이의 투쟁은 교황권을 왕좌에 올려놓는 수단이 되었다…. 모든 진리의 원칙이 짓밟혔고, 538년과 함께 암흑시대가 시작되었다." — {S. N. Haskell, The Story of Daniel the Prophet, p. 266}
"죄의 사람(교황)이 아리우스파 고트족의 패배로 인해 그의 오만한 왕좌에 올려졌다." — {Uriah Smith, Daniel and the Revelation, p. 270}
"이 이단을 박멸하기 위한 목적에서, 유스티니아누스는 교황을 교회의 머리이자 이단들을 교정하는 자로 선포하였다." — {Uriah Smith, Daniel and the Revelation, p. 268}
"배교한 이 그리스도인들은 반(半) 이교적인 동료들과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교리 가운데 가장 본질적인 요소들을 향해 그들의 전쟁을 돌렸다." — {The Story of Redemption, p. 324}
-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일어나고 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드러나지 아니하면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라." — {2 Thessalonians 2:3}
508년에 해당하는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은 곧 삼위일체 교리를 통해 이루어진 배교로 이해될 수 있다. 이교도였던 클로비스는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아이리스로 자신의 표식을 바꾸었고, 전쟁을 통해 아리우스파 국가들을 멸망시키며 삼위일체 교리를 강제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전개 속에서, 결국 538년 교황이 정치적 권력을 갖는 법왕교(papacy)가 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예언의 종결점인 1798년, 법왕교가 붕괴되면서 삼위일체 교리를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이던 종교적 환경도 함께 흔들리게 되었다. 바로 이 시기에, 제칠일안식일재림교회의 개척자들은 삼위일체 교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흔히 재림교회의 개척자들이 비삼위일체론자에서 삼위일체론자로 전환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처음에 그들(재림교인들)은 일반적으로 삼위일체론자들이었으나, 이후에는 거의 만장일치로 삼위일체 교리를 비성경적인 것으로 거부하게 되었다. 그들이 받아들인 신격(Godhead)에 관한 진술은 다음과 같았다. ‘기원되지 않았고, 독립적이며, 영원하신 한 분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 곧 전능하신 아버지께서 계신다. 그분은 모든 세계의 창조주시며 보존자이시다. 이 하나님은 하나의 영적 지성, 하나의 무한한 마음이시며, 항상 동일하시고 결코 변하지 않으신다. … 또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약속된 메시아요 세상의 구주이시다.’” — {Joshua V. Himes, 「Christian Connection」, Encyclopedia of Religious Knowledge}
재림교회의 개척자들이 각기 다른 개신교 종파에서 출발하여 삼위일체 신앙을 떠나 비삼위일체적 이해에 이르게 된 과정은, 다니엘서 12장에 언급된 “희생물을 제거하며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우는 때”의 종결점인 1798년 이후,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책이 열리면서 얻게 된 예언적 진리의 결과였다. 이는 개인적 신학 취향의 변화가 아니라, 예언의 빛 아래에서 재발견된 성경적 이해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
엘렌 화잇은 다니엘서 11장 31절을 언급하며, 이 예언이 단지 과거에 한 번 성취되고 끝난 사건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반복될 성격을 지닌 예언임을 분명히 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다니엘서 11장에 나타난 예언은 거의 완전한 성취에 이르렀다. 이 예언의 성취로 일어난 역사 가운데 많은 부분이 다시 반복될 것이다. 30절에서는 “그가 근심하여 돌아가서 거룩한 언약을 향해 분노를 품고 행할 것이며, 다시 돌아가서 거룩한 언약을 버린 자들과 더불어 지혜를 나눌 것이다. 그의 편에 선 군대가 일어나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고, 항상 드리는 제사를 제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다”라고 말하는 한 세력이 언급된다. 이 말씀에 묘사된 것과 유사한 장면들이 다시 일어나게 될 것이다." - [Letter 103, 1904, pp. 5, 6]
엘렌 화잇이 이 글을 썼을 당시, 다니엘 11장 31절의 예언은 아직 그녀의 시대에 성취되지 않았다. 그녀는 이 구절을 508년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 곧 아리우스파 국가들이 무너지고 교황권의 기반이 세워지던 시기를 설명하면서, 그와 “유사한 장면들”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증언한 것이다.
실제로 삼위일체 교리가 제칠일안식일재림교회 안에 공식적으로 채택된 시점은 1980년, ‘28개 기본신앙’에 포함되면서였다. 이는 엘렌 화잇 사후 수십 년이 지난 뒤의 일로, 그녀가 말한 “다시 반복될 역사”가 후대에 성취될 가능성을 열어 두는 대목이다.
그녀는 또 다른 글에서 이 반복의 원리를 더욱 분명히 한다.
"우리는 크고 엄숙한 사건들의 문턱에 서 있다. 많은 예언들이 곧 연속적으로 성취될 것이다. 모든 권력의 요소들이 가동될 준비를 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는 반복될 것이며, 오래된 논쟁들이 다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백성은 사방에서 위험에 둘러싸이게 될 것이다." - [Testimonies to Ministers, p. 116]
이 증언에서 엘렌 화잇은 “과거의 역사는 반복될 것”이며, “오래된 논쟁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이는 다니엘 11장 31절에 묘사된 성소를 더럽히고, ‘항상 드리는 제사’를 제거하며,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우는 세력이 과거에만 국한되지 않고, 마지막 시대에 또 다른 형태로 재현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엘렌 화잇의 증언은, 다니엘서의 예언을 단순한 과거사로 봉인하지 말고, 반복되는 역사와 현재의 신앙 현실 속에서 다시 주의 깊게 살펴야 할 예언으로 바라보아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