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렌 화잇이 사용한 표현 “하늘의 삼중체의 세 살아 있는 인격들(three living persons of heavenly trio)” 은 그녀의 저술이 삼위일체 교리를 지지한다는 결정적 증거로 흔히 사용된다. 그 결과 교회 안의 많은 이들은 이 표현이 한 하나님을 “세 동등하고 영원한 인격들의 연합”으로 정의하는 교회의 삼위일체 교리와 조화를 이룬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엘렌 화잇은 “하늘의 삼중체의 세 살아 있는 인격들” 이라고 썼을 때 무엇을 의미했는가? 이를 살펴보자.
“하늘의 삼중체의 세 살아 있는 인격들” 이라는 표현의 원문 출처는, 엘렌 화잇이 1905년 11월 캘리포니아주 세인트 헬레나에 거주하던 중 기록한 「나와서 따로 서라(Come Out and Be Separate)」 라는 편지로 추적할 수 있다. 이 편지는 J. H. 켈로그의 잘못된 가르침에 대응하여 그 시기에 기록된 여러 편지 중 하나였다.
이 원고의 일부는 1906년에 두 차례 출판되었다. 하나는 「The Bible Training School」 이라는 정기간행물에, 다른 하나는 「Testimonies for the Church Containing Messages of Warning and Instruction to Seventh-day Adventists」 라는 소책자에 실렸다. 이후에도 네 차례 더 다른 출판물에 재수록되었다.
“하늘의 삼중체에는 세 살아 있는 인격들이 있다. 이 세 능력,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살아 있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자들이 침례를 받으며, 이 능력들은 하늘의 순종하는 백성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애를 살기 위해 노력할 때 그들과 협력할 것이다.” {BTS March 1, 1906, par. 2} (원본은 여기서 볼 수 있다.)




오늘날 비삼위일체 공동체 안에는 “하늘의 삼중체(heavenly trio)” 라는 진술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이 진술에서 성령을 가리켜 사용된 “persons(인격들)”이라는 단어가, 교회 내부의 일부 불순한 인물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삽입된 것이며, 이는 교회의 삼위일체적 입장—특히 성령론(pneumatology) 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마치 엘렌 화잇이 1906년 출판물들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했던 것처럼 얘기한다.

위 이미지는 “heavenly trio(하늘의 삼중체)” 라는 표현이 사용된 Bible Training School 출판물의 원본 타자 원고 출처이다.
엘렌 화잇의 출판 저작들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래의 진술들을 고려하기 바란다. 엘렌 화잇은 편집과 출판에 대한 감독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글이 출판되기 전에 항상 직접 읽고, 자신이 의도한 바가 정확히 표현되었는지를 확인했다. 그녀는 스스로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작성하여 나의 일꾼들이 편집하도록 맡긴 모든 글은, 출판되기 전에 반드시 내가 직접 읽는다 …” — {Lt84-1898.18}
“나는 복사된 모든 원고를 읽어보아 모든 것이 마땅히 그래야 할 대로 되어 있는지 확인한다. 나는 책 원고 전체를 인쇄소로 보내기 전에 읽는다. 그러니 내 시간이 얼마나 바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는 것 외에도, 나는 여러 교회에서 말하도록 부름을 받고, 중요한 집회들에 참석해야 한다. 주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 {Lt133-1902.4}
“나는 나의 형제들 가운데서, 내가 출판 전에 『교회증언 9권』의 주일 노동과 관련된 페이지들을 읽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인상을 제거할 수 있는 말들을 쓰고자 한다 …” — {Lt94-1910.1}
이 때문에 그녀는 당시 누구든지 자신의 견해를 알고 싶다면 소문을 따르지 말고 공개 출판물을 읽어야 한다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었다.
“이제 진리를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말한다. 화잇 자매가 무엇을 했고, 무엇을 말했고, 무엇을 썼는지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보고를 믿지 말라. 주께서 그녀를 통해 무엇을 계시하셨는지를 알고 싶다면, 그녀의 출판된 저작들을 읽으라. 그녀가 쓰지 않은 어떤 관심사가 있다면, 그녀가 무엇을 말했다는 소문을 성급히 받아들이고 퍼뜨리지 말라.” — {5T 696.1}
그러므로 엘렌 화잇은 ‘persons(인격들)’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personalities(성격들)’을 의미했으며, 누군가가 출판물을 조작했다고 말하는 것은, 어떠한 사실적 근거도 없는 주장이다. 엘렌 화잇은 자신의 글과 책들에 대해 감독권을 가지고 있었고, 이 인용문을 두 번이나 직접 출판했다.
엘렌 화잇는 당시 존 하비 켈로그(John Harvey Kellogg)가 새롭게 삼위일체론자(trinitarian)로 입장을 바꾸었고, 동시에 그의 범신론적(pantheistic) 가르침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903년 10월 29일, 당시 총회장(General Conference president)이었던 A. G. 다니엘스는 W. C. 화잇(엘렌 화잇의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켈로그 박사가 자신의 저서 The Living Temple을 개정·재출판하려는 계획과, 그가 새로 받아들인 삼위일체 신학에 대해 갖고 있던 우려를 전했다.
“그(켈로그)는 자신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삼위일체에 대한 견해가, 명확하고 절대적으로 올바른 진술을 하는 데 장애가 되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짧은 시간 안에 그는 삼위일체를 믿게 되었고, 이제 모든 어려움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꽤 분명히 볼 수 있게 되었으며, 그 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이제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들, 그리고 하나님 성령을 믿는다고 말했으며, 그의 견해로는 모든 공간과 모든 생명체를 충만히 채우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라 하나님 성령이라고 했다.” — {출처 클릭}
이 편지에서 다니엘스는, 켈로그가 최근 삼위일체를 받아들인 것이 이전의 범신론적 견해를 조화시키기 위한 시도였음을 설명한다. 더 중요하게는, 이 편지는 켈로그의 삼위일체 수용이 당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안에서 일반적으로 유지되던 비삼위일체(non-Trinitarian) 입장에서 벗어난 변화였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1903년 11월 4일, W. C. 화잇은 A. G. 다니엘스가 1903년 10월 29일에 보낸 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어머니와 나는 방금, The Living Temple의 개정과 재출판을 위해 제안된 여러 계획들에 대해 언급한 10월 29일자 당신의 편지를 읽었습니다. … 나는 그녀가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곧 당신에게 편지로 쓸 것이라 생각합니다. … ‘나는 조만간 특별한 증언을 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문제의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 매우 충분하고 명확한 진술을 담아야 하며, 동시에 매혹적이고 기만적인 이론들을 통해 진리에서 벗어난 자들의 가르침에 담긴 오류들을 지적하는 글들도 포함해야 합니다.’” — {출처 클릭}
따라서, 앞서 언급한 「Come Out and Be Separate」라는 편지 외에도, 엘렌 화잇은 켈로그의 잘못된 가르침과 관련하여 “Kellogg J.H" {Lt253}, “Teach the Word” {Lt211-1903}, “Leaders in Our Medical Work” {Lt216-1903}등 여러 추가적인 편지들을 작성했다.
주목할 점은 많은 사람들이 “하늘의 삼중체"라는 표현을 삼위일체 교리와 동일시하지만, 엘렌 화잇은 이 용어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역사적 맥락을 보면, 그녀는 이 표현을 켈로그의 범신론적 사상과 그가 새롭게 받아들인 삼위일체적 견해에 대응하고 그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했다.
그녀는 켈로그의 신념에 반대하면서 삼위일체론자들이 하나님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던 비유들을 비판했으며, 하나님을 ‘삼위일체 (one God in three persons)’로 묘사하는 개념을 단 한 번도 암시하지 않았다.
“나는 지난밤 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떤 사람들이 켈로그 박사에게 엘렌 화잇이 전하는 진술들을 그가 믿느냐고 물었다고 주장하며 한 말들이 담긴 편지들이 나에게 도착했다. …” — {Ms21-1906.1} (“Come Out and Be Separate”)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진보된 과학적 사상들을 탐구하고 있는 자들의 견해는 신뢰할 수 없다. 다음과 같은 표현들이 사용되고 있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빛과 같고, 아들은 형체를 입은 빛과 같으며, 성령은 널리 퍼진 빛과 같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이슬과 같고, 아들은 아름다운 형상으로 모인 이슬과 같으며, 성령은 생명의 자리 위에 떨어진 이슬과 같다.’ 또 다른 표현은 이렇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수증기와 같고, 아들은 무거운 구름과 같으며, 성령은 떨어져 상쾌한 능력으로 역사하는 비와 같다.’” — {Ms21-1906.8} (“Come Out and Be Separate”)
그녀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모든 영적주의적 표현들은 단지 무(無)에 불과하다. 그것들은 불완전하고, 진실하지 않다. 그것들은 어떤 지상의 비유로도 비교될 수 없는 그 위엄을 약화시키고 축소시킨다. 하나님은 그분의 손으로 만드신 것들과 비교될 수 없다. 이것들은 모두 인간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인 단지 지상의 것들일 뿐이다. 아버지는 땅의 것들로 묘사될 수 없다…” — {Ms21-1906, par. 9}
같은 편지에서, 몇 문단 뒤에 우리가 지금 검토하고 있는 바로 그 진술이 등장한다.
“하늘의 삼중체에는 살아 있는 세 인격들이 있다. 이 세 위대한 능력,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살아 있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자들은 침례를 받으며, 이 능력들은 하늘의 순종하는 백성들과 함께 협력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애를 살기 위한 그들의 노력 속에서 역사할 것이다.” — {Ms21-1906.11}
엘렌 화잇이 하늘의 삼중체 (heavenly trio)라는 표현을 출판하기 거의 50년 전인 1858년, 삼위일체론자였던 W. E. 보드먼은 The Higher Christian Life를 저술했다. 이 책에서 그는 하나님에 대한 삼위일체적 관점을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비유들을 사용했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빛과 같고, 아들은 형체를 입은 빛과 같으며, 성령은 널리 퍼진 빛과 같다.” 엘렌 화잇은 그녀가 작성한 편지에서 보드먼의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그 표현을 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반박하기 위해서였다.
즉 보드먼의 책은 "삼중체"라는 표현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동시에, 엘렌 화잇이 보드먼의 노골적인 삼위일체 언어를 의도적으로 피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켈로그에 대한 그녀의 글 {Ms21-1906}에서, 엘렌 화잇은 보드먼의 문구를 거의 문자 그대로 반복한다. 그러나 보드먼이 그의 글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한 하나님의 세 인격"(tri-personality of the one God {p. 104}) 혹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인격들" (living personalities of the living God”{p. 104}), 또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인격들" (persons of the living God {p. 105})라고 부르며 명백한 삼위일체 교리를 표현하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엘렌 화잇은 그 대신 "하늘 삼중체의 살아있는 인격들" (living persons of the heavenly trio)라는 표현으로 바꿔 사용했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보드먼의 언어는 하나의 하나님을 구성하는 세 “인격” 또는 “인격성”이라는 고전적 삼위일체 공식을 분명히 반영하지만, 엘렌 화잇이 사용한 "삼중체"라는 표현은 동일한 신학적 함의를 지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는 이를 그렇게 해석하려 한다. 주목할 점은, 엘렌 화잇은 보드먼이 그의 책에서 사용한 것과 같은 "삼위일체 하나님" (Triune God)와 같은 노골적인 삼위일체 용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보드먼이 그의 책에서 세 인격의 속성을 설명할 때 사용한 표현을 보자.
[1]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다."
(The Father is all the fulness of the Godhead invisible.)
[2] "아들은 나타나신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다."
(The Son is all the fulness of the Godhead manifested.)
[3] "성령은 신격의 모든 충만함을 드러나게 하시는 분이다."
(The Spirit is all the fulness of the Godhead making manifest.)
보드먼은 여기에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이 인격들은 단순한 직분이나 계시의 양상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살아 있는 인격들이다.” — {W. E. Boardman, The Higher Christian Life, p. 105}
보드먼: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다."
(The Father is all the fulness of the Godhead invisible.)
엘렌 화잇:
"아버지는 신격의 모든 충만함을 육체적으로 지니고 계시며, 필멸자의 시야에는 보이지 않는다."
(The Father is all the fulness of the Godhead bodily, and is invisible to mortal sight.)
여기서 엘렌 화잇은 “bodily(몸을 지닌)”라는 표현을 추가함으로써, 하나님이 실체적이고 형태를 지닌 존재임을 분명히 한다. 또한 하나님의 보이지 않음은 절대적 비가시성이 아니라 “필멸자의 시야에만 보이지 않는다 (to mortal sight)”는 의미로 제한한다. 이를 통해 그녀는 하나님께 인격성과 형체가 있음을 확증한다. 이 사상은 그녀가 첫 번째 환상에서 받은 계시와도 일치한다.
"나는 보좌를 보았고, 그 위에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아 계셨다. 나는 예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분의 아름다운 인격(모습)을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 나는 예수께 그분의 아버지도 예수와 같은 형상을 가지고 계신지 물었고, 그분은 그렇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볼 수 없었다." — {Letter From Sister Harmon, Day-Star, March 14, 1846, par. 7}
이러한 이해는 또한 그녀의 남편이 저술한 소책자에 제시된 관점과도 일치한다.
보드먼:
"아들은 나타나신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다."
(The Son is all the fulness of the Godhead manifested.)
엘렌 화잇:
"아들은 나타나신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를 ‘그 본체의 정확한 형상’이라 선언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서 아버지의 인격성이 드러난다."
(The Son is all the fulness of the Godhead manifested. The Word of God declares Him to be ‘the express image of His person.’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soever believeth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 Here is shown the personality of the Father.)
여기서 엘렌 화잇은 보드먼의 문장에 의도적으로 많은 내용을 추가한다. 그녀는 히브리서 1:3을 인용하여 그리스도를 “그의 본체의 형상(the express image of His person)”으로 규정하며, 이는 아들이 아버지의 인격을 완전하고 온전하게 드러내는 실체적 표현임을 뜻한다. 또한 요한복음 3:16을 인용함으로, 아들이 실재하는 인격적 존재로서 주어졌음을 강조한다.
마지막 문장인 "여기에서 아버지의 인격성이 드러난다" (Here is shown the personality of the Father.)는 예수께서 그녀에게 “아버지께서도 나와 같은 형체를 가지고 계신다”고 말씀하셨던 그 환상 경험을 다시 한 번 반영한다. 이를 통해 엘렌 화잇은 아버지와 아들이 각각 구별되는 인격적·실체적·형체를 지닌 존재임을 분명히 하며, 두 분의 개별성과 실제적 인격성을 강하게 강조한다.
엘렌 화잇이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몸을 가진 인격적 존재(bodily personalities)"라고 이해한 관점은, 가톨릭적 삼위일체 이해를 분명히 거부하는 것이다. 가톨릭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인류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다(창 1:26 참조). 창세기 1장의 문맥에 따르면, 이 ‘형상과 모양’은 인간의 육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몸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적 본성은 육체적이거나 물질적일 수 없는데, 이는 육체에 내재된 잠재성(potency)이 하나님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형상과 모양’은 지성과 의지라는 고등한 능력이나 작용을 가리키는 것이다.” — {출처 링크}
이는 또한 감리교 전통의 삼위일체 정의, 곧 “하나님은 오직 한 분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이시며, 영원하시고, 몸도 부분도 없으시다” 라는 입장과도 명백히 충돌한다.
보드먼:
"성령은 신격의 모든 충만함을 드러나게 하시는 분이다."
(The Spirit is all the fulness of the Godhead making manifest.)
엘렌 화잇:
“....신격의 모든 충만함 안에(in) 계신 성령으로서,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믿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나타내신다.”
(The Comforter...is the Spirit 'in' all the fulness of the Godhead, making manifest the power of divine grace to all who receive and believe in Christ as a personal Saviour.)
보드먼은 “성령 is (곧, 성령이 곧 신격의 충만함이다)”라고 표현한 데 반해, 엘렌 화잇은 “성령 is in (신격의 충만함 안에 계신다)”으로 바꿔 썼다. 이 차이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엘렌 화잇은 아버지에 대해서 “아버지는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몸으로 계신 분” 이라 말하고, 아들에 대해서는 “아들은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나타나신 분, 곧 아버지의 인격의 정확한 형상” 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령에 대해서는, 신격 그 자체로 ‘존재한다(is)’고 말하지 않고, '신격의 충만함 안에 계신다(is in)’고 표현한다. 이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언어의 전환은 중요한 신학적 함의를 가진다. 이는 성령을 신격의 또 하나의 독립적 실체나 ‘별도의 구현’으로 제시하지 않고, 아버지와 아들 안에 거하며 그들로부터 나오는 내적 (divine indwelling) 임재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해는 성경과 엘렌 화잇의 저술 전반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소유격 표현들과도 정확히 부합한다. 예를 들면,
- 하나님의 성령 (Holy Spirit of God)
- 하나님의 영 (Spirit of God)
- 그의 영 (His Spirit)
- 그리스도의 성령 (Holy Spirit of Christ)
- 그리스도의 영 (Spirit of Christ)
등의 표현들이다.
역사적으로 이는 엘렌 화잇이 공의회적·신조적 삼위일체와는 다른, 훨씬 더 섬세하고 비신조적으로 성령을 이해했음을 알려준다. 이는 그녀가 속했던 감리교적 삼위일체 전통이나, 오늘날 SDA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성령론(pneumatology)과도 구별된다.
점점 더 분명해지는 사실은, 엘렌 화잇이 보드먼의 『The Higher Christian Life』를 단순히 읽은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비판적으로 숙고하며 자신만의 신학적 틀로 재구성했다는 점이다. 보드먼의 책은
- 한 하나님의 세 인격들 (tri-personality of the one God)
- 삼위일체의 하나님 (the Triune God)
-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인격들 (living persons of the living God)
과 같은 노골적인 삼위일체 용어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엘렌 화잇은 이러한 표현들을 의도적으로 단 하나도 인용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전혀 새로운 표현인 "하늘의 삼중체" (heavenly trio)로 용어를 바꿔 사용한다.
따라서 엘렌 화잇의 "하늘의 삼중체" 표현을 그녀가 살던 시대의 삼위일체 개념, 혹은 감리교적·공의회적 삼위일체와 그대로 동일시하는 것은, 중요한 역사적·신학적 맥락을 간과하는 것이다. 그녀의 표현은 많은 면에서 의도적인 신학적 재정의, 혹은 전통적 삼위일체로부터의 분명한 거리 두기로 보아야 한다. 엘렌 화잇의 언어를 기존 삼위일체 틀에 그대로 끼워 맞추는 것은 단순화의 오류이며, 그녀의 신학을 역사적·문맥적으로 존중하지 않는 신학적 환원주의라 할 수 있다.



삼중체 (Trio)라는 단어는 세 가지(혹은 세 인격)로 이루어진 하나의 집합 또는 묶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개념이 성경적이기 위해서는 (엘렌 화잇이 하나님 아버지, 그분의 아들, 그리고 성령을 가리켜 말한 것이라 이해한다면) 성경 안에서 이 세 분이 함께 묶여 언급되는 장면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세 분이 하나의 집합으로 언급된다고 해서 오늘날 재림교회에서 주장하는 삼위일체 교리가 자동으로 성립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단순히 세 분이 함께 언급된다고 해서 곧바로 ‘셋이 하나의 하나님’ 혹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 {고린도후서 13:14}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에 따라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을 통해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에 이르도록 선택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을지어다.” — {베드로전서 1:2}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한 분 주요, 한 믿음이며, 한 침례이고 한 주와 한 믿음과 한 침례가 있으며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모든 것의 한 분 하나님이시며 아버지시니 그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며 모든 것을 통하여 너희 모두 안에 계시느니라.” — {에베소서 4:4–6}
"이제 선물은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무는 다르나 주는 같으며 활동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같으시되” — {고린도전서 12:4–6}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분과 그분의 왕좌 앞에 계신 일곱 영과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자들 중에서 처음 나신 분이시며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요한계시록 1:4–5}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주며” — {마태복음 28:19}
여기서 우리는 세 분, 곧 아버지(1), 아들(2), 성령(3)이 ‘이름’(단수) 아래 함께 묶여 있는 것을 본다. 이것은 ‘이름의 삼중체’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성경 구절에서 우리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아버지, 아들, 성령이 함께 역사하시는 삼중적 작용을 본다. 그러므로 엘렌 화잇이 “삼중체(trio)”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분명히 타당하다.
그렇다면 형용사 “heavenly(하늘의)”는 어떠한가? 문맥적으로 이는 기원이나 출처가 하늘에 있다는 의미다.
[1] 하나님 아버지: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선한 행위를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마태복음 5:16}
[2] 하나님의 아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가지 아니하였느니라.” — {요한복음 3:13}
[3] 성령: “그것들은 곧 복음을 선포한 자들이 하늘에서 보내신 성령님과 더불어 이제 너희에게 전한 것이요” — {베드로전서 1:12}
따라서 “하늘의 삼중체(heavenly trio)”라는 표현은 성경을 통해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인격성(personalities)” 혹은 그들의 “연합(unity)”을 믿는다고 해서 그 자체로 곧바로 “삼위일체론자(Trinitarian)”가 되는 것은 아니다. 비삼위일체론자들도 세 분의 신적 “인격(Persons)”의 존재 자체는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교리의 특징적 가르침은 더 구체적이다. 곧 “한 하나님”이 계시며, 그 “한 하나님”이 “세 인격의 연합”이라는 주장이다.
삼위일체 교리에는 두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즉 ‘셋됨(three-ness)’과 ‘하나됨(one-ness)’이다. 앤드루스 대학교 종교학과 학과장이자 히브리 성경 교수인 Paul Petersen은 다음과 같이 썼다:
“삼위일체 교리의 핵심 요소는 하나됨과 구별됨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하나이면서 동시에 셋이다. 이 확신을 표현하기 위해, 성경에 명시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단어들과 표현들이 사용되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존재/본질(being)’에 있어서 하나라고 주장함으로 하나됨을 고백하며, ‘세 인격’이 있다고 가르침으로 구별됨을 고백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그 한 이름 하쉠(Ha-Shem)은 셋이 공유한다(마 28:19 참조). ‘하나의 존재(One being)’이지만 세 인격이라는 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다.” — Paul Petersen, Andrews University, “God in Three Persons – in the New Testament,” p. 3, 23, Biblical Research Institute Release, 2015년 5월
“하늘의 삼중체(heavenly trio)”라는 표현은 세 분의 구별되는 신적 인격성의 존재를 확언하긴 하지만, 이것을 고전적 정통(동질·동본질) 삼위일체나 현대 재림교회의 ‘삼위일체적 3-in-1 하나님’ 교리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엘렌 화잇이 이 표현을 사용했다고 해서, 성령을 기능적/경륜적 의미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편재하는(personal omnipresent) 인격적 임재’로 이해하는 비삼위일체적 관점을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그녀의 성령 이해는, 아버지와 아들과 동일한 존재론적 의미에서 완전히 자율적인 “제3의 인격”이라기보다, 그들로부터 “나오고(proceeding)” 그들 안에 “거하는(residing)” 내적이고 신적인 임재로 제시된다. 또한 그녀의 언어는 전통적 삼위일체 공식을 지지하지않고, 의도적이고 다르게 표현한다.
엘렌 화잇의 글을 접할 때는 우리 자신의 신학적 편향에 근거해 성급히 결론을 내리려는 충동을 거부해야 한다. 대신 그녀의 글들을 전체적으로 면밀히 살피고, 관련 진술들을 비교하며, 모순 없이 조화시키려 노력함으로써, 건전하고 균형 잡힌 이해에 도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