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신 29:29).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주신 당신 자신의 계시는 우리의 연구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은 우리가 간파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최고의 지성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본성을 추측하고자 자신의 힘을 지칠 정도로 발휘할지라도 마침내 그 노력은 아무런 결실을 가져 오지 못할 것이다. 이 문제는 우리에게 해결하도록 위탁되어 있지 않다. 어떤 사람의 정신으로도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본성을 추리해내고자 몰두해서는 안된다. 여기에는 침묵이 웅변이다. 전지(全知)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논쟁의 대상이 아니시다. —  {MH 429.3}

위의 진술에서 엘렌 화잇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 이상으로 “간파하려 하거나”, 곧 하나님의 본성을 추리하는 일을 경고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주신 당신 자신의 계시는 우리의 연구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엘렌 화잇은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로부터 나와 각 제자에게 전달되는 성령의 생명을 주는 능력은 영혼을 두루 퍼져 들어가 동기와 애정을 새롭게 하고, 가장 은밀한 생각까지도 변화시키며, 거룩한 행위의 귀한 열매를 맺게 한다. 이러한 생애는 참되고 살아 있는 포도나무와의 연합을 증거한다. 이 영적 생명의 창시자는 보이지 않으며, 그것이 어떻게 전달되고 유지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방식은 인간 철학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것은 경건의 신비이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기록된 말씀과 조화를 이룬다.” — {3SP 418.2, 3}

요약하면, 엘렌 화잇은 하나님의 본성 자체를 철학적으로 규명하려는 추측은 금지하면서도, 성경에 계시된 범위 안에서 하나님과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는 연구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정당하다는 균형 잡힌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엘렌 화잇은 성령의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면서, 그것이 신비이며 인간 철학의 능력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했다.

“성경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보여 주며, 각자의 인격성과 개별성 또한 그와 같이 분명히 드러낸다.” — {8T 268.1}

로마서 1:20은 이렇게 말한다.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Godhead)은 창세로부터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 — {로마서 1:20}

같은 구절을 미국개역표준역(ARV)은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세상이 창조된 이후로 그의 보이지 않는 것들이, 곧 그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divinity)이 만들어진 것들을 통하여 분명히 인식되었나니…” — {로마서 1:20, ARV} (엘렌 화잇, 『치료봉사』 410쪽 인용)

하나님의 본성에 관한 일부 측면은 언제나 신비로 남아 있겠지만, 예언의 신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사이의 관계가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으며’, 각자의 인격성과 개별성 또한 ‘분명히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그리스도, 혹은 성령의 인격성에 대해 말할 때, 오류에 빠지도록 방치된 것이 아니다.

또한 엘렌 화잇이 로마서 1:20을 인용할 때, ‘신격(Godhead)’을 ‘신성(divinity)’으로 번역한 ARV를 사용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떤 이들은 ‘Godhead’라는 용어를 세 인격으로 구성된 삼위일체적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하여, 엘렌 화잇의 글에 잘못된 함의와 의미를 덧씌우곤 한다. 그러나 ‘Godhead’라는 말은 단순히 ‘신성(divinity)’을 뜻한다.

또한 성령의 인격성에 관한 논쟁의 핵심은, 흔히 오해되듯이 성령 '무엇인가', 즉 본성(nature)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이는 신비이며, 우리가 파고들지 말라고 권면받은 영역이다). 오히려 쟁점은 '누구인가', 즉 정체성(identity)의 문제이다. 성령은 누구인가? 하나님께서 우리가 누구를 경배해야 하는지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내버려 두셨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래는 엘렌 화잇의 자주 오해되는 진술들에 응답하는, 성령의 정체성에 관한 간단한 연구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사람들은 엘렌 화잇의 진술을 잘못 인용하거나 문맥을 벗어난 채로 인용한다. 더 나아가 그녀의 대부분의 책들은 원본 원고에서 발췌·편집된 편집본(compilations)이기 때문에, 반드시 원래의 출처를 고려해야 하며, 또한 그녀의 다른 수많은 글들과 비교·대조하여 읽음으로써 그녀가 사용한 표현들의 정확한 의도와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Third Person"과 "third person"

“죄는 신성(Godhead)의 제 삼위(third person)강력한 작용을 통하여만 물리칠 수 있고 이겨낼 수 있으며..” — {DA 671.2 (1898)}

시대의 소망 초판(1940년 이전)에서는 “third person of the Godhead”라는 표현이 소문자 t, p로 인쇄되었으나, 1940년 이후 재출판본에서는 “Third Person of the Godhead”로 대문자 T, P로 변경되었다. 일부(비삼위일체 재림교인들)는 이 소문자에서 대문자로의 변경이 의도적이었으며, 성령의 인격성에 대한 당시 재림교회의 이해, 즉 성령을 독립된 인격적 존재로 보는 관점에 더 부합하도록 보이게 하려는 목적이었다고 주장해 왔다. 흥미롭게도, 일부 삼위일체 재림교인들 역시 바로 그 논리를 사용해 왔다.

아래에 제시된 1896년 원본 원고(시대의 소망 최초 출판 2년 전) 에서는 해당 표현이 소문자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원본과 시대의 소망 판본 사이에 문단의 미묘한 수정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공식 SDA 웹사이트에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시대의 소망(The Desire of Ages) 의 해당 문장은 대문자로 표기되어 있는 반면, 같은 표현이 수록된 복음전도(Evangelism) 라는 책에서는 소문자로 나타나며, 대신 편집자가 삽입한 소제목 “The Power of God in the Third Person”(“제삼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에서는 대문자가 사용되고 있다. 참고로, 이러한 제목은 엘렌 화잇의 원문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 편집자가 추가한 것이다.

이 점은 매우 흥미롭다. 왜냐하면 많은 비삼위일체론자들은 복음전도라는 책이 르로이 프룸(LeRoy Froom)에 의해 편집·편찬되었으며, 재림교회 안에 삼위일체 교리를 의도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졌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만약 일부 비삼위일체론자들의 주장처럼 대문자 표기가 더 삼위일체적으로 보이게 만든다면, 그렇다면 프룸은 실제 인용문 자체도 대문자로 표기했을 법한데, 오히려 그는 원문 인용에서는 소문자를 유지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1940년 이전에 출판된 모든 자료에서 “third person of the Godhead”이라는 표현은 소문자로 인쇄되었다.

엘렌 화잇의 출판된 저작들의 정당성을 의심하고, 음모론적 관점에 더 기울어 있는 이들에게 한 가지 주의를 덧붙이고자 한다. 시대의 소망(The Desire of Ages) 이 처음 출판될 당시 엘렌 화잇은 생존해 있었으며, 그녀는 자신의 글과 책이 출판되기 전에 반드시 직접 읽고, 자신이 의도한 바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는지 확인한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따라서 본 글의 필자는, 최소한 초판(소문자로 표기된 형태) 에 대해서는 엘렌 화잇이 직접 감수하고 승인했을 것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엘렌 화잇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동역자들이 편집하도록 준비한 모든 글은, 출판되기 전에 항상 내가 직접 읽어야 한다. 나는 복사된 모든 원고를 읽어, 모든 것이 마땅히 되어 있는지 확인한다. 또한 책 원고는 인쇄소로 보내기 전에 전부 읽는다. 그러므로 나의 시간은 항상 가득 차 있다. 글을 쓰는 일 외에도, 나는 여러 교회에서 설교하도록 부름을 받고, 중요한 집회에도 참석해야 한다. 주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신다면 나는 이 일을 할 수 없다. 나는 나의 형제들 중 누구의 마음에도, 내가 출판 전에 『교회를 위한 증언』 제9권에 실린 주일 노동에 관한 글을 읽지 않았다는 인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이 진술은 엘렌 화잇이 자신의 저작들이 출판되기 전에 직접 검토하고 책임 있게 승인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아래는 엘렌 화잇의 다른 저술들에서 동일한 표현(“the third person of the Godhead”)을 사용한 몇 가지 주목할 만한 변형 문장들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의 직무를 설명하실 때, 그분은 자신의 마음을 채우고 있던 기쁨과 소망으로 그들을 고무하고자 하셨다. 그분은 당신의 교회를 위하여 풍성한 도움을 마련하셨다는 사실로 기뻐하셨다. 성령은 그분이 당신의 백성을 높이기 위하여 아버지께 구할 수 있었던 모든 선물 중 가장 위대한 선물이었다. 성령은 거듭나게 하는 기관으로 주어질 것이었으며, 이것이 없이는 그리스도의 희생은 아무런 효력이 없었을 것이다. 악의 세력은 수세기 동안 강화되어 왔고, 인간이 이 사탄의 포로 상태에 굴복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죄는 신격의 세 번째 인격 (third person of the Godhead), 곧 전혀 약화되지 않은 에너지로, 하나님의 능력의 충만함으로 오시는 분의 강력한 역사를 통해서만 저항되고 극복될 수 있었다. 세상의 구속주께서 이루신 일을 실제로 효력을 발휘하게 하는 이는 바로 성령이시다. 마음이 정결하게 되는 것도 성령을 통해서이다. 성령을 통해 신자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영을 유전적이거나 후천적으로 형성된 모든 악한 경향을 극복하게 하는 신적 능력으로 주셔서, 자신의 품성을 교회에 새기신다.” — {RH November 19, 1908, Art. B, par. 5}
“신적 역사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 매우 단순한 수단을 통해 성취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그분의 정부의 모든 부분이 서로 의존하여, 마치 바퀴 안에 또 다른 바퀴가 있는 것처럼 완전한 조화 속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능력 위에 역사하시며, 그분의 영으로 보이지 않는 현을 만지시고, 그 진동이 우주의 끝까지 울려 퍼지게 하신다. 악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는 신격의 세 번째 인격 (third person of the Godhead), 곧 성령이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만 제어될 수 있다.” — {Special Testimonies, Series A, No. 10 (SpTA10), p. 36.3 to 37.1}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서 승천하실 때, 자신을 믿은 자들과 앞으로 믿게 될 자들에게 한 선물을 주기로 결정하셨다. 그분의 중보적 보좌로의 승천을 기념하고 영화롭게 할 만큼 충분히 풍성한 선물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그분의 위대함과 왕권에 합당한 것이어야 했다. 그분은 자신의 대표자, 곧 신격의 세 번째 인격(third person of the Godhead)을 주시기로 결정하셨다. 이 선물은 그 어떤 것으로도 능가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분은 모든 선물을 하나로 담아 주시고자 하셨으며, 그러므로 회심시키고, 깨우치며, 거룩하게 하는 능력인 신적 성령을 그분의 선물로 주실 것이었다.” — {6BC 1052.5}

여기서 우리는 “신격의 세 번째 인격”이 “강력한 대행자(mighty agency)”, “하나님의 능력(power of God)”, 또는 그리스도의 “대표자(representative)”로 동일시되고 있음을 본다. 또한 이것은 “회심시키고, 깨우치며, 거룩하게 하는 능력”으로 묘사되며,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선물(donation)”로 표현된다.

많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삼위일체론자들은 위의 인용문들이 엘렌 화잇이 삼위일체론자였음을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그녀가 성령을 “인격(Person)”이라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언의 신은 “신격의 세 번째 인격” 혹은 성령이라는 표현으로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죄를 이기고 극복하도록 우리를 도와주는 이 강력한 대행자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우리가 이러한 예언의신의 표현들과 마주할 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바탕으로 인간적인 해석을 만들어 내야 하는가? 아니면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계속해서 예언의 신을 연구하여, 예언의 신이 스스로 설명하도록 허용해야 하지 않는가?

신격의 세 번째 인격의 강력한 대행자

엘렌 화잇은 “죄는 오직 신격의 세 번째 인격의 강력한 대행자를 통해서만 저항되고 극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대의 소망 671.2). 그렇다면 만일 이 “세 번째 인격”이 그리스도와는 별개의 전혀 다른 존재라면, 어떻게 성경과 예언의 신은 그리스도(또는 그분의 영) 역시 죄를 이기고 극복하도록 돕는 분으로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가?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그 자리에 임재하신다. 마음에 죄에 대한 깨달음을 주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 {Ev 275.1}
“그리스도 밖에서는 그대 안에 아무 능력도 없다. 그러나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거하시게 하는 것은 그대의 특권이며, 그대가 그분의 역사에 협력할 때 그분은 그대 안에서 죄를 이기실 수 있다.” —{OHC 76.5}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영으로 화목하게 하는 감화력과 죄를 제거하는 능력을 보내신다.” — {RH, May 19, 1904}
“예수님만이 죄에서 구원할 능력을 가지고 계시며, 악의 권세에서 해방하신다.” — {RH, Feburary 10, 1891}
“악에 대한 유일의 방어는 그분의 의를 믿음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마음속에 내재하시는 것이다.” — {DA 324.1}
“그들에게는 한 하나님과 한 구주가 있으며, 한 영, 곧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 가운데 연합을 이루게 한다.” — {9T 189.3}
“그리스도는 모든 옳은 동기의 근원이 되신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 마음 가운데 죄에 대한 증오심을 넣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 {SC 26.3}
“세상에 있는 정욕의 부패에서 벗어난 후,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도움을 원하게 된다…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신적 본성으로 임하신다.” — {Ms138-1906.20}
“사람의 마음에서 악의 세력을 꺾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뿐이다. … 그분의 은혜만이 타락한 본성의 경향을 제어하고 굴복시킬 수 있다.” — {CCh 322.8}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서 교리가 아니라 자신의 인격, 곧 그분 성품의 신성을 가리키신다.” — {RH, April 5, 1906}

다시 말해, “죄는 오직 신격의 세 번째 인격의 강력한 대행자를 통해서만 저항되고 극복될 수 있다”고 했다면, 어떻게 동시에 “예수님만이 죄에서 구원하고 악의 권세에서 해방할 능력을 가지신다”고 말할 수 있으며, 또 “악에 대한 유일한 방어”가 “그분의 의를 믿음으로써 마음속에 내재하시는 그리스도”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 둘은 동일한 분, 동일한 역사일 수 있는가?

또한 다음의 진술들을 함께 고려해 보라.

“그분의 영을 받기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덕(능력)이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나온다. 그리고 바로 이 방법으로 하나님의 품성과, 그리스도와 아버지의 완전함이 세상 앞에 나타난다.” — {RH, October 14, 1902, par. 11}
“진정한 회개를 하게 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오는 은덕이다.” — {SC 26.2}
“오직 독생자에게서 나오는 성령은 인간의 몸과 혼과 영을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인적 본성에 결속시킨다.” — {1SM, p250 – 251}
“그때 예수께서 그들 위에 성령을 불어넣으셨다. 그 숨결 속에는 빛과 능력과 많은 사랑과 기쁨과 평안이 있었다.” — {EW 55}

위의 진술들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성령(곧 신격의 세 번째 인격)이 그리스도 자신에게서 나오는 그리스도의 영과 동일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사탄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불결한 영향력을 불어넣는 방식과 유사하다. “사탄은 그들에게 불결한 영향을 불어넣곤 했다.” — {EW 56}

사탄이 또 다른 ‘인격’을 불어넣었는가? 그에게서 또 다른 존재가 나왔는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도 제3의 어떤 개별적인 신적 존재를 불어내신 것인가? 예수께서 “제3의 하나님”을 숨결로 내보내신 것인가? 아니면 이 세 번째 인격이란, 예수께서 친히 신자들에게 불어넣으시는 그분 자신의 숨결과 영을 의미하는 것인가?

신격의 세 번째 인격의 정체는, 동일한 책에서 나온 전체 문단을 읽어 보면 분명해진다. 아래를 보라.

“죄는 신성의 제 삼위의 강력한 작용을 통하여만 물리칠 수 있고 이겨낼 수 있으며, 그분은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한 가운데 오실 것이었다. 세상의 구주께서 이루신 일을 효력 있게 만드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성령은 마음을 순결하게 만드신다. 성령을 통하여 신자는 거룩한 품성을 나누어 가지는 자가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유전적이며 배양된 악의 성향들을 이기며 자신의 품성을 당신의 교회에 새기는 거룩한 능력으로서 성령을 주셨다.” — {DA 671.2}

그러므로 신격의 세 번째 인격이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바로 그분 자신의 영, 곧 모든 유전적·후천적 악의 경향을 이기게 하는 신적 능력 외에 다른 존재가 아니다.

왜 성경과 예언의 신은 성령을 종종 다른 인격처럼 말하는가?

성령은 분명히 “세 번째 인격”이며, 그리스도를 대표한다. 그러나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과 동일한 방식의 인격(person) 은 아니다. 다시 말해, 성령은 아버지의 영을 지니신 그리스도 자신이지만, 육체적·가시적인 인간 인격성을 벗으신 상태의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대행을 통해 자신을 주실 때, 그 성령은 그리스도의 육체적 인격과는 구별되는 고유한 인격성을 지니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는 바로 그리스도 자신의 임재이며, 다만 비물질적(비육체적) 인격성으로 임재하시는 것이다.

아래는 엘렌 화잇이 성령(곧 그리스도의 대표자)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몇 가지 진술이다. 이보다 더 많은 진술들이 있지만, 지금은 이 정도면 요점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성령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정의할 필요는 없다. 그리스도는 성령이 보혜사라고 말씀하셨고, 보혜사는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진리의 영’인 성령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곧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시며 또 너희 속에 계실 것이라’ [요 14:16–17]. 이 말씀은 보혜사라 불리는 그리스도의 영의 편재성을 가리킨다. 또 예수는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 [요 16:12–13].” — {MS14 p. 179.2}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며, 그분의 대표자이다. 여기에 마음에 죄의 자각을 일으키는 신적 대행자가 있다.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그분의 영의 능력이 나타날 때, 인간성 속에서 신성이 번쩍이는 것을 보게 된다.” — {13MR 313.3, 1895)
“인성을 입고 계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친히 모든 곳에 계실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분이 떠나 아버지께로 가시고, 지상에서 자신의 대리자로 성령을 보내는 것이 제자들에게는 전적으로 유익했다. 성령은 인성의 인격성을 벗으신 그리스도 자신이며, 그와는 독립되어 있다. 그분은 자신의 성령으로 모든 곳에 임재하는 분으로 자신을 나타내실 것이었다.” — {Lt119, Feb 18, 1895}
“주님은 곧 오신다. 우리는 오직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완전하고 온전한 이해를 원한다. 다른 사람에게서 영을 받아서는 안전하지 않다. 우리는 성령을 원한다. 그 성령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과 교제하면 능력과 은혜와 효율성을 얻게 된다.” — {Lt66, April 10, 1894}
“그러나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예수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이라 불리는 누룩이며, 그 영이 마음과 품성을 변화시킨다.” — {MS36 1891}
“요한복음 17장을 연구하라. 그리고 그리스도의 기도를 어떻게 드리고, 그 기도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워라. 그분이 바로 보혜사이다. 그분은 마음에 거하여 기쁨을 충만하게 하신다.” — {RH, Jan 27, 1903}
“예수는 진리의 영으로 너에게 온다. 성령의 마음을 연구하고, 주님과 상의하며, 그분의 길을 따르라.” — {2MR 337.1}
“믿음으로 예수를 바라볼 때, 우리의 믿음은 그림자를 꿰뚫고, 보혜사 예수를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경배하게 된다.” — {19MR 297.3}
“그리스도는 ‘보혜사’라는 복된 이름으로 알려져야 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 14:26].” — {MS7 1902}
“구주 곧 그리스도가 우리의 보혜사이다. 나는 그분이 그러한 분임을 직접 경험으로 증언한다.” — {8MR 49.3}
“그리스도와 같은 보혜사는 없다. 그분은 매우 부드럽고 참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함께 느끼신다. 그분의 영이 마음에 말씀하신다.” — (RH, Oct. 26, 1897)

출처: https://asitreads.com/2017-8-29-who-is-the-third-person-of-the-godh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