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교회 역사에 대해 SDA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바

“오늘날 일부 재림교인들은 우리의 신앙이 수년에 걸쳐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우리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가지고 있었던 어떤 시점으로 시간을 되돌리려 한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적 재림신앙’을 회복하려는 모든 시도는, 우리의 유산에 대한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실패할 수밖에 없다.” - {『Adventist Review』, 1994년 1월 6일, p.10, 윌리엄 G. 존슨, 「Present Truth – Walking in God’s Light」}
“재림교회의 신앙은 ‘현재의 진리(present truth)’의 영향 아래 수년에 걸쳐 변화해 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 곧 우리의 구주요 주님에 관한 가르침이다. 제임스 화잇, J. N. 앤드류스, 유라이어 스미스, J. H. 와그너를 포함한 많은 개척자들은 아리우스적 혹은 반(半)아리우스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은 이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 어떤 시점에서 아버지로부터 나옴(begotten, generated)을 받았다는 견해였다. …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의 기본 신앙에 포함된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 역시 초기 재림교인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일부 있다.” - {같은 글}
“만일 재림교회의 창립자들이 오늘날 교단의 기본 신앙을 구독해야 한다면, 그들 대부분은 교회에 가입할 수 없을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대부분은 삼위일체 교리를 다루는 기본 신앙 제2조에 동의하지 못했을 것이다.” - {조지 R. 나이트 – 앤드류스 대학교 신학대학원 교회사 교수, 『Ministry』, 1993년 10월, p.10}
“같은 맥락에서, 재림교회의 창립자들 대부분은 예수께서 영원하며 참 하나님이시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기본 신앙 제4조와도 충돌했을 것이다. J. N. 앤드류스는 ‘하나님의 아들은 … 하나님을 아버지로 두셨으며, 영원의 과거 어느 시점에서 시작된 날들을 가지셨다’고 말했다. 또한 1888년 미니애폴리스 사건으로 유명한 E. J. 와그너는 1890년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와 오신 때가 있었으나, 그때는 영원의 날들 속에서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어, 유한한 이해로는 사실상 시작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기록했다.” - {같은 글}
“삼위일체 교리의 발전은 때때로 교리적 변화가 이전 세대가 지나가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경우, 삼위일체 교리가 교회 안에서 표준적(normative) 교리로 자리 잡기까지 5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 {멀린 D. 버트(Merlin D. Burt), 「History of Seventh-day Adventist Views on the Trinity」, 『Journal of the Adventist Theological Society』 제17권 1호 (2006), 논문 9, p.139}

재림교회 내에서 잘 알려진 삼위일체 옹호자이며 『The Trinity』의 공동 저자인 제리 문(Jerry Moon)은 다음과 같이 썼다.

“재림교회의 주요 개척자들 대부분이 신학적으로 비(非)삼위일체론자였다는 사실은 이제 재림교회 역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제리 문, 『The Trinity』, p.190}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결국 두 가지 중 하나다. 개척자들이 틀렸고 현재의 교회가 옳거나, 혹은 개척자들이 옳았고 오늘날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성경적 진리에서 배도했거나.” — {제리 문, 『The Trinity』, 「Trinity and antitrinitarianism in Seventh-day Adventist history」 장, p.190}

앤드류스 신학대학원 교회사 교수이자 재림교회 연구센터(Center for Adventist Research) 소장인 멀린 버트는 재림교회 내 삼위일체 교리의 역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한 가지 측면은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입장의 발전이다. 이 교리들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교회 안에서 표준적 교리로 자리 잡았다.” — {멀린 버트, 「Demise of Semi-Arianism and Anti-Trinitarianism in Adventist Theology, 1888–1957」, 서문(iv)}

그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교회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에 걸쳐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정통’ 기독교적 견해로 점진적으로 이동했다. … 1940년대 동안 교회 구성원 다수는 점점 더 그리스도의 영원하고 비(非)기원적인 신성과 삼위일체를 믿게 되었지만, 여전히 변화에 대해 주저하거나 심지어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 {같은 책, pp.47–48}

재림교회 내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간략한 요약

1)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교회 설립 이후 117년 동안(1863–1980)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 공식적으로 직접 투표된 교리를 가진 적이 없었다. 이 주제에 대해 총회 차원에서 공식적이고 체계적인 공동 연구가 이루어진 적도 없었다. 실제로 교회가 이 문제에 대해 직접 투표한 것은 1980년이 처음이었다. 1931년의 신앙 진술서는 1946년 총회에서 별도의 논의나 투표 없이 관행적으로 채택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교회 전체적으로 이 교리에 대해 큰 혼란이 존재하며, 공식적인 연구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2) 엘렌 화잇은 삼위일체 교단인 감리교회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약 2천5백만 단어에 달하는 그녀의 방대한 저술 전체에서 하나님을 설명하기 위해 “삼위일체(trinity)”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단어를 알고 있었고 사용할 기회도 충분히 있었음이 분명하지만, 하나님을 묘사하는 데에는 그 표현을 피했다. 그녀가 “trinity”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단 한 번뿐이며, 그마저도 요한일서 2장 15–17절에 나오는 세 가지 육적인 욕망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이 경고가 이제 그대에게 이르렀는데, 그대는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나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할 것인가? 그러나 옛 저술가들이 세상의 삼위일체라고 불렀던 것,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조심하라. 만일 이것들과 장난하고 타협한다면, 그것들은 그대의 멸망이 될 것이다. 거듭나지 아니하고, 유전적으로 반감 있는 성향들이 변화되지 않으며, 순결과 성화가 삶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그대의 배는 난파될 것이며, 영혼은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 {Lt43-1898.25}

더 나아가, 그녀가 삼위일체 신학자들(예: W. E. 보드맨, 존 해리스)의 저작을 읽었고, 때로는 그들의 표현을 차용하기도 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삼위일체”로 묘사하거나 “삼위일체 하나님(triune God)”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또한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세 위격의 연합체”라는 의미로 사용한 적도 없었고, 하나님을 복수적 존재로 암시하는 어떤 표현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물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 비(非)삼위일체론자(non-trinitarian) 라는 표현은 합리적인 분류로 보인다. 그녀는 대신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은 (수적으로 단일한) 한 분의 인격(person)” 이시며, 여러 인격의 연합체가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다.

“하나님은 한 인격이시며, 그리스도 또한 한 인격이시다. 그리스도는 말씀 가운데 ‘그의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요 그 본체의 형상’으로 언급되어 있다.” [히브리서 1:3] - {Ms46-1904.15}
“주님의 사업에서의 나의 경험 동안, 나는 반복해서 이러한 잘못된 사상들을 대면해야 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자존하시는 분이라는 분명하고 강력한 빛이 주어졌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은 한 인격이시며, 그리스도는 ‘그의 본체의 형상’이라는 명확한 교훈을 받아왔다. [히브리서 1:3] 하나님은 언제나 계셨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나 ‘왜’가 아니다.” - {Ms137-1903.3}
“나는 사랑스러운 예수님을 자주 보았는데, 그분이 한 인격이심을 보았다. 나는 그분께 그분의 아버지도 그분과 같은 형태를 가진 인격이신지 물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내 아버지의 본체의 형상이다’라고 하셨다.” - {EW 77.1}

- 1850년대, 엘렌 화잇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아버지께서 실체적 형태를 지닌 인격적 존재라고 말했다. 이는 하나님을 형체가 없는 존재로 규정한 감리교의 신조 및 가톨릭 신조 (“오직 한 분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이 계시며, 그는 영원하시고 몸도 없고 부분도 없다”)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진술이다.

- 1869년, 그녀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동등하시다고 말했다. 이 점에서 그녀는 동시대의 대부분 인물들보다 앞서 나갔다.

- 1872년, 그녀는 그리스도는 천사들과 같은 피조물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다.

- 1890년대, 『시대의 소망(The Desire of Ages)』 출판 시기와 맞물려, 증언서들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령의 인격성에 대해 보다 분명하게 증거하기 시작했다.

3) 1844년부터 최소한 1890년대 후반까지, SDA 신자들 사이의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입장은 비(非)삼위일체적이었다. 이는 교회의 기본 원칙(Fundamental Principles, 1872–1914)에 잘 나타나 있다. 엘렌 화잇은 이 원칙들에 대해 강력한 지지를 표명했으며, 따라서 그 안에는 포기되어서는 안 될 어떤 진리의 요소가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189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에 이르러, 교회 내부의 영향(켈로그 위기)과 외부의 영향(그중 대표적인 인물로 더들리 캔라이트)이 결합되면서, 교회는 반응을 강요받았고, 그 결과 삼위일체적 용어를 보다 긍정적인 의미로 수용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성육신 이전에 ‘낳아진(독생된) 아들’이라는 존재론적 이해, 그리고 성령을 아버지와 아들의 영으로 이해하는 비삼위일체적 신념은 유지되었다.

또한 1844년부터 1930년대까지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 이전에 낳아졌다는 견해가 공통된 이해였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그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변화했으며, 일부는 정통적 견해(즉, 영원한 발생, eternal generation)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더 나아가, 엘렌 화잇이 성령을 “인격”이라고 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동안 성령은 일관되게 하나님의 영이자 그리스도의 영으로 이해되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 SDA 신학은 분명하게 ‘비(非)독생론(unbegottenism)’, 즉 예수께서는 성육신 이전에 ‘낳아진 아들’이 아니라 ‘유일무이한(unique) 아들’이라는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오늘날의 지배적인 견해가 되었다.

신앙의 기둥들에 대해 엘렌 화잇이 말한 내용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시험과 시련을 견뎌 온 영원한 진리의 단 위에 굳게 서야 한다. 우리는 우리 신앙의 확실한 기둥들을 붙들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진리의 원칙들은 우리의 유일한 참된 기초이다. 그것들이 오늘의 우리를 만들었다. 시간의 경과는 그 가치들을 조금도 약화시키지 못했다. …” — {1SM p. 201}
“개척자들로 하여금 진리를 규명하게 하라.”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이 진리인지를 증언할 때, 그 진리는 영원히 진리로 남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빛과 상반되는 어떠한 이후의 가설도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성경에 대한 해석을 가지고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그것은 그들에게는 진리일지 모르나 진리는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우리의 신앙의 기초로 주셨다. 하나님 친히 우리에게 무엇이 진리인지 가르치셨다. 하나가 일어나고 또 다른 하나가 일어나, 성령의 증명 아래 주어진 빛과 모순되는 새로운 빛을 제시할 것이다.” — (Counsels to Writers and Editors, 1905, p. 31)
“우리는 우리 신앙의 특별한 요점들과 모순되는 기별을 가지고 오는 자들의 말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들은 성경 구절들을 한데 모아 자신들의 주장하는 이론을 둘러싸는 증거로 쌓아 올린다. 이런 일은 지난 오십 년 동안 반복해서 일어나 왔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존중받아야 하지만, 만일 그 적용이 하나님께서 지난 오십 년 동안 붙들어 오신 기초에서 한 기둥이라도 움직이게 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이다. 그러한 적용을 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과거의 기별들에 능력과 힘을 부여했던 성령의 놀라운 증거를 알지 못하는 자이다.” — {CW 32.2}
“나는 1844년의 시간이 지난 후, 진리를 찾는 소수의 무리들이 함께 모여 성경을 연구하고 하나님께 빛과 인도를 구하던 가운데 형성된 증거의 사슬 중 한 고리라도 무시하거나 버리고 싶지 않다. … 진리는 한 점 한 점 우리의 마음에 너무도 확고하게 박혀, 우리는 의심할 수 없었다. … 우리의 초기 경험에서 주어진 증거는 그 당시와 동일한 힘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진리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동일하며, 진리의 구조에서 핀 하나나 기둥 하나도 움직일 수 없다. 1844년, 1845년, 1846년에 말씀 가운데서 구해졌던 그 진리는 모든 점에서 여전히 진리로 남아 있다.” — (Letter 38, 1906, pp. 1,2 [MS])
“1844년의 시간이 지난 후 우리에게 주어진 진리들은, 주님께서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여 주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동일하게 확실하고 변함이 없다.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환상들은 매우 분명하여, 우리가 받아들인 것이 진리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성령에 의해 증명되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귀하고 귀한 빛이, 오늘 우리가 붙들고 있는 대로 우리 신앙의 주요 요점들을 확립하였다.” — (Letter 50, p. 3, par. 4 [1906 MS])
“이 시기에 많은 이들이 성소 문제에 관한 우리의 신앙을 흔들려 할 것이나, 우리는 흔들려서는 안 된다. 우리 신앙의 기초에서 핀 하나도 움직여서는 안 된다. 진리는 여전히 진리이다. 불확실해지는 자들은 그릇된 이론들로 흘러가게 되며, 마침내 우리가 과거에 진리로 받았던 증거들에 대해 불신자가 되고 말 것이다. 옛 이정표들은 반드시 보존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방향을 잃게 될 것이다.” — (Letters 395, 1906, p. 4 [1906MS])
“우리 백성 가운데 많은 이들이 우리의 신앙의 기초가 얼마나 견고하게 놓여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나의 남편, 장로 요셉 베이츠, 피어스 장로(초기 개척자들 가운데 ‘아버지 피어스’로 회상되던 인물로, 이는 초기 재림운동에서 목회·행정 사역을 했던 스티븐 피어스를 가리킨다), 에드슨 장로, 그리고 통찰력 있고 고귀하며 진실했던 다른 이들은, 1844년의 시간이 지난 후 숨은 보화를 찾는 것처럼 진리를 탐구한 사람들 가운데 있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모였고, 우리는 열심히 연구하며 기도했다. 우리는 종종 밤늦게까지, 때로는 밤을 새워가며 빛을 구하고 말씀을 연구했다. 이 형제들은 성경의 뜻을 깨닫고 능력 있게 가르칠 준비를 하기 위해, 반복해서 함께 모여 성경을 연구했다. 그들이 연구 중 ‘우리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지점에 이르면, 주의 성령께서 내 위에 임하셨고, 나는 환상 가운데로 이끌려 갔으며, 우리가 연구하던 본문들에 대한 분명한 설명이 나에게 주어졌고, 우리가 어떻게 일하고 효과적으로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도 주어졌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명, 그리고 그분의 제사장직에 관한 성경의 이해를 돕는 빛이 주어졌다. 그때부터 우리가 하나님의 도성에 들어갈 때까지 이어지는 진리의 한 줄기가 내게 분명히 보여졌으며, 나는 주께서 내게 주신 교훈을 다른 이들에게 전했다.” — (RH, May 25, 1905 par. 24)
“… 우리가 반세기 이상 선포해 온 진리들은 반복해서 도전을 받아 왔다. 믿음의 사실들은 거듭 논쟁의 대상이 되었으나, 그때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성령의 역사로 진리를 확증하셨다. 이 시대의 진리의 원칙들을 의문시하고 무너뜨리려 일어난 자들은 엄중한 책망을 받았다.” — 서신 95, 1905년 ※ 주: 이 글은 『시대의 소망』 출판 이후에 기록된 것이다. {10MR 45.2}
“이제는 사물들을 정확한 이름으로 부를 때가 되었다. 진리는 영광스럽게 승리할 것이며, 오랫동안 두 의견 사이에서 머뭇거리던 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취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고, 기도로 한 점 한 점 확립되고 성령의 능력으로 인쳐진 진리의 기초를 허무는 이론들을 받아들일 것이다. 원수가 들여온 거짓 이론들에 지혜롭게 대응하기 위해, 옛 진리들은 새롭게 소생되어야 한다. 진리와 오류 사이에는 연합이 있을 수 없다. 속임에 이끌린 자들과의 연합은 그들이 회심할 때에만 가능하다.” — {Lt121-1905.10}
“이 시점에서 사람들이 은밀하면서도 강력한 방식으로 우리의 신앙의 기초를 허물려 하는 영향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이 기초는 우리 사업의 시작에서 말씀에 대한 기도하는 연구와 계시로 놓여졌다. 이 기초 위에 우리는 지난 오십 년 동안 건축해 왔다. 내가 우리의 신앙의 몇몇 기둥들을 제거하려는 일의 시작을 보면서, 할 말이 없겠는가? 나는 ‘맞서라!’는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 1SM 207.3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이다. 지난 오십 년 동안, 말씀의 가르침—특히 하늘 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봉사와 요한계시록 14장에 기록된 마지막 날들을 위한 하늘의 기별—에 대해 우리의 마음을 흐리게 하려는 모든 형태의 이단이 우리에게 가해져 왔다. 각양각색의 기별들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에게 제시되어, 기도하는 연구로 한 점 한 점 찾아내고 주님의 기적을 행하시는 능력으로 증거된 진리를 대신하려 했다. 그러나 우리를 오늘의 우리로 만든 이정표들은 반드시 보존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증언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을 분명히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의심할 수 없는 권위에 기초한 근본 원칙들을 믿음의 굳은 손으로 굳게 붙들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 {1SM 208.2-1903}

1905년 12월 4일, 엘렌 화잇은 아들 W. C. 화잇에게 보낸 편지에서, 교회 안으로 들어올 배도에 대해 경고하며, 교인들에게 “우리 교단 신앙의 처음 원칙들을 굳게 붙들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곧 실현될 것인데, 그것은 점점 발전하고 증가하며 더욱 강해지고 있는 큰 배도이다. 이 배도는 주께서 하늘로부터 호령과 함께 강림하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교단 신앙의 처음 원칙들을 굳게 붙들고, 힘에서 힘으로, 더욱 증가하는 믿음으로 전진해야 한다. 우리는 초기 경험의 사건들로부터 지금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확증된 믿음을 항상 지켜야 한다. 이제 우리에게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한 더 넓은 안목과 더 깊고, 더 진지하며, 흔들림 없는 믿음이 필요하다. 만일 시간이 지난 후, 시작 단계에서 진리를 확증하기 위해 성령의 능력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필요했다면, 지금은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들과 귀신의 교훈을 따르고 있는 이때, 진리를 확증하는 데 있어 모든 증거가 더욱 필요하다. 지금은 영혼이 나태해질 여지가 전혀 없다. 만일 성령의 능력이 우리의 설교와 기도와, 우리가 제안하는 모든 행동 가운데 필요했던 때가 있었다면, 바로 지금이다. 우리는 첫 경험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며, 사람들에게 동일한 기별을 전하되, 그 기별은 더욱 강화되고 확장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 기별이 신적 기원에 의해 확증되었음을 보고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주를 알기 위해 계속 나아가야 하며, 그분의 나아가심이 아침처럼 예비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영혼은 모든 능력의 근원으로부터 오는 소생케 하심이 필요하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 곧 우리를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으로 만들어 준 진리의 본질적 요점들에 굳게 매이게 하는 그 경험 안에서, 강화되고 확증될 수 있다.” — {Lt326-1905.2}

우리 신앙의 원칙들은 보존되어야 한다

“비록 사건들의 긴 흐름이 수많은 세기를 거쳐 이어져 오고, 새롭고 중요한 진리들이 때때로 드러난다 할지라도, 처음에 진리였던 것은 여전히 진리이다. 오늘날의 증가된 빛은 과거의 더 희미한 빛을 부정하거나 무효로 만들지 않는다.” — {ST June 3, 1886, par. 13}
“지난 오십 년은, 1844년의 시간이 지난 후 우리에게 확증되었던 위대하고 놀라운 증거들과 더불어 우리가 받아들인 우리 신앙의 그 어떤 작은 점이나 원칙도 흐리게 만들지 못했다. 쇠약해진 영혼들은 말씀에 따라 굳게 세워지고 소생되어야 한다. 또한 복음의 사역자들과 주님의 의사들 가운데 많은 이들의 쇠약해진 영혼들도 말씀에 따라 소생될 것이다. 한 마디의 말씀도 변경되거나 부인되지 않았다. 우리의 큰 실망 이후, 시간이 지난 다음에 성령께서 진리로 증언하신 것은 진리의 견고한 기초이다. 진리의 기둥들이 계시되었고, 우리는 우리를 오늘의 우리로 만든 기초 원칙들—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믿음을 가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으로서의 원칙들을 받아들였다.” — {Lt326-1905.3}

엘렌 화잇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 교단 신앙의 처음 원칙들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

그녀에 따르면, 이 신앙의 원칙들은 “기도하는 연구를 통해 찾아낸 것이며, 주님의 기적을 행하시는 능력으로 증언된 것”이고, 또한 “의심할 수 없는 권위 위에 기초한 것”, 그리고 “성령께서 진리로 증언하신 것”이었다. 이러한 진술들은 주님의 기별자로부터 나온 것으로서, 매우 강력한 지지라고 말할 수 있다. 엘렌 화잇은 거듭거듭 신자들에게, 교회 개척자들이 그렇게도 견고하게 놓아 둔 “우리 신앙의 기초”를 굳게 붙들라고 호소했다. 그녀는 또한 “그때[1844년]부터 우리가 하나님의 도성에 들어갈 때까지 이어지는 진리의 한 줄기가 내게 분명히 보여졌다”고 회상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엘렌 화잇에게, 그녀가 글을 쓰던 시점부터 “우리가 하나님의 도성에 들어갈 때까지” 교회에 필요할 모든 필수적인 진리의 기둥들을 주셨음을 보여 준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러한 진술들이 1903년부터 1905년 사이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 존재하던 가장 최근의 기본 원칙(Fundamental Principles)은 1889년판이었으며, 이는 1931년이 되어서야 다시 개정되었다. 이 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교회 내 많은 이들은, 엘렌 화잇의 저서 『시대의 소망(The Desire of Ages)』이 출판된 1898년을 기점으로 SDA 교회의 비삼위일체적 입장이 이미 삼위일체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세워진 기초에서 핀 하나나 기둥 하나라도 옮기려는 자들이 들어올 때, 우리 사업의 개척자였던 연로한 이들이 분명히 말하게 하라. 또한 이미 죽은 자들도, 우리 정기간행물에 그들의 글을 재인쇄함으로써 말하게 하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진리의 길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시며 주신 신적 빛의 광선들을 모으라. 이 진리는 시간과 시련의 시험을 견딜 것이다.” — {1MR 55.1}
“하나님의 분명한 역사로 확증된 진리들은 굳게 서 있어야 한다. 아무도 그 구조에서 핀 하나나 기초석 하나라도 옮기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 신앙의 기둥들을 허물려는 자들은, 성경이 말하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들과 귀신의 교훈을 따르리라’고 한 바로 그 부류에 속한다.” — {1MR 55.2}
“옛 이정표들을 제거하려는 자들은 굳게 붙들고 있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받았고 어떻게 들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성소에 관한 신앙, 또는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의 인격성에 관한 신앙의 기둥들을 제거하려는 이론들을 들여오려는 자들은, 눈먼 사람처럼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불확실성을 들여와 하나님의 백성을 닻 없는 상태로 떠돌게 하려 한다.” — {MR760 12.2}
“거짓말쟁이란 거짓 이론과 교리를 제시하는 자이다.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성을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다.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도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만일 너희가 아버지와 아들의 인격성에 관해 처음 받아들였던 진리들을 계속 믿고 순종한다면, 너희는 사랑 안에서 그들과 연합될 것이다.” — [Ms 23-1906.20]

엘렌 화잇은 변화가 일어날 것을 경고했다

다음 기별은 1903년에 기록되었으며, 그녀가 말하기를 이후에 “오류로 여겨질 것”이라고 한 25개 기본 원칙(Fundamental Principles)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영혼들의 원수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가운데 큰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는 가정을 들여오려고 애써 왔다. 그리고 그 개혁이란, 우리 신앙의 기둥으로 서 있는 교리들을 포기하고, 재조직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일 이러한 개혁이 이루어진다면, 어떤 결과가 따를 것인가? 하나님께서 지혜로 남은 교회에 주신 진리의 원칙들은 버려질 것이다. 우리의 종교는 변화될 것이다. 지난 오십 년 동안 이 사업을 지탱해 온 기본 원칙들은 오류로 간주될 것이다. 새로운 조직이 세워질 것이며, 새로운 종류의 책들이 기록될 것이다. 지적 철학의 체계가 도입될 것이다. 이 체계의 창시자들은 도시들로 들어가 놀라운 일을 할 것이다. 물론 안식일도 가볍게 여겨질 것이며,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역시 그러할 것이다. 어떤 것도 이 새로운 운동을 가로막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지도자들은 덕이 악보다 낫다고 가르치겠지만, 하나님이 제거된 상태에서 그들은 인간의 능력에 의존할 것이며, 하나님 없는 인간의 능력은 무가치하다. 그들의 기초는 모래 위에 세워질 것이며, 폭풍과 광풍이 그 구조를 휩쓸어 버릴 것이다.” — {1SM 204.2}
“누가 그러한 운동을 시작할 권위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성령의 기적적인 역사로 증언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 진리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진리와 조화되지 않는 모든 것을 배격하지 말아야 하겠는가?” — {1SM 205.1}
“나는 주님의 성령께서 나로 하여금 기록하도록 강권하신 것을 보내는 일에 대해 주저하며 지체했다. 나는 이러한 궤변들이 미치는 오도하는 영향력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스며들어 오고 있는 오류들은 반드시 직면되어야 한다.” — {1SM 205.2}

그녀는 무엇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는가?

1. 영혼들의 원수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가운데 큰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는 가정을 들여오려고 애써 왔다.

2. 그 개혁이란 우리 신앙의 기둥으로 서 있는 교리들을 포기하고, 재조직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3. 하나님께서 지혜로 남은 교회에 주신 진리의 원칙들은 버려질 것이다.

4. 지난 오십 년 동안 이 사업을 지탱해 온 기본 원칙들은 오류로 간주될 것이다.

5. “새로운 조직”이 세워질 것이며, 새로운 종류의 책들이 기록될 것이다.

6. 지적 철학의 체계가 도입될 것이다.

7. 새로운 운동을 가로막는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지도자들은 덕이 악보다 낫다고 가르치겠지만, 하나님이 제거된 상태에서 (즉,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본래의 개념이 제거되고, ‘한 하나님’이 곧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대체되면서) 그들은 인간의 능력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8. 주목할 점은, 엘렌 화잇이 이러한 말을 기록하던 당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가지고 있던 모든 “기본 원칙들” 가운데, 오늘날의 SDA 교회가 오류로 간주하는 유일하게 두드러진 교리는, 바로 하나님의 인격성에 관한 교리, 즉 교회 개척자들이 믿고 가르쳤던 그 교리라는 사실이다.

“영혼들의 원수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가운데 큰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는 가정을 들여오려고 애써 왔다. 그리고 그 개혁이란 우리 신앙의 기둥으로 서 있는 교리들을 포기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 — {1SM 204.2}
“나는 우리 백성에게 경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많은 이들이 신앙의 기초 기둥들을 허무는 이론들과 궤변들을 받아들일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 {1SM p.196, 1904}
“주님께서는 우리가 마지막 사업에 들어설 때 과거의 역사가 다시 되풀이되어야 한다고 선언하셨다. 마지막 시대를 위해 그분께서 주신 모든 진리는 세상에 선포되어야 하며, 그분께서 세우신 모든 기둥은 강화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어떤 새로운 조직에도 들어갈 수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진리로부터의 배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 {2SM 390.1}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이다. 지난 오십 년 동안, 말씀의 가르침—특히 하늘 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봉사와 요한계시록 14장에 기록된 마지막 날들을 위한 하늘의 기별—에 대해 우리의 마음을 흐리게 하려는 모든 형태의 이단이 우리에게 가해져 왔다. 각양각색의 기별들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에게 제시되어, 기도하는 연구로 한 점 한 점 찾아내고 주님의 기적을 행하시는 능력으로 증거된 진리를 대신하려 했다. 그러나 우리를 오늘의 우리로 만든 이정표들은 보존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증언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을 분명히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의심할 수 없는 권위에 기초한 근본 원칙들을 믿음의 굳은 손으로 굳게 붙들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 1SM 207.3-208.2

엘렌 화잇이 이러한 모든 경고를 기록하던 당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비(非)삼위일체 교단이었으며, 교회의 기본 원칙(Fundamental Principles), 특히 하나님의 인격성에 관한 제1조와 제2조는 1889년부터 교회 연감(Yearbook)에 게재되다가, 1931년에 변경되어 다시 게재되었고, 이후 1980년에 공식적으로 투표를 통해 채택되었다.

초기 재림교인들의 기본 원칙 (Fundamental Principles)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이 가르치고 실천하는 기본 원칙 선언(Declaration of Fundamental Principles Taught and Practiced by Seventh-day Adventists)」은, 주로 제임스 화잇이 작성한 25개 조항으로 구성된 문서로, 미시간주 배틀크릭(Battle Creek)에서 소책자 형태로 출판되었다.

이 문서는 분명한 비(非)삼위일체적 기초를 확립하였으며, 1931년까지 어떤 형태로도 대체되거나 변경되지 않았다. 이 25개 조항에는 ‘Godhead(신격)’이나 ‘Trinity(삼위일체)’라는 용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이 기본 원칙들이 교단 공식 연감(Yearbook)에 처음 수록된 해는 1889년이며, 이후 1905년, 1909년, 1913년, 1914년에 재차 게재되었으나, 신학적으로 주목할 만한 변화는 전혀 없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1914년이 1889년판 기본 원칙이 아무런 수정 없이 마지막으로 게재된 해라는 사실이다. 이 시점에는 교회의 기초를 세우는 데 헌신했던 거의 모든 원로 개척자들이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엘렌 화잇 역시 1915년에 별세했다. 1915년부터 1930년까지, 교회의 연감에서 기본 원칙(Fundamental Principles)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1931년, 그것은 ‘기본 신앙(Fundamental Beliefs)’이라는 명칭으로 다시 발표되었는데, 여기에는 주목할 만한 변화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1931년 연감(Yearbook)에서 “기본 원칙(Fundamental Principles)”은 “기본 신앙(Fundamental Beliefs)”으로 바뀌었고, 제2조에 삼위일체가 삽입되었다. 1931년의 새로운 신앙 진술서(Statement of Beliefs)는 투표나 공식 권한 없이 연감에 실렸다. 당시 총회장 C. H. 왓슨은 자신을 포함한 네 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선정할 권한만을 투표로 부여받았을 뿐이며, 그 목적은 연감에 실릴 진술서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이 네 명은 총회 부서기 M. E. 컨, 『리뷰 앤 헤럴드』 편집장 F. M. 윌콕스, 리뷰 앤 헤럴드 관리자 E. R. 팔머, 그리고 총회장 C. H. 왓슨이었다. 그러나 『리뷰 앤 헤럴드』 편집장(33년 재임)이었던 프랜시스 맥렐런 윌콕스가 단독으로 22개 조항의 새로운 신앙 진술서를 작성했고, 위원회의 승인만을 받은 뒤, 이를 에드슨 로저스(1903–1941년 총회 통계 담당자)에게 넘겨 1931년 연감에 수록되었다.

주목해야 할 점은, 1931년 진술서에 표현된 ‘신격(Godhead)’에 대한 믿음은 삼위일체적 용어를 사용하고는 있으나, 실제로는 ‘정통 삼위일체(orthodox trinitarianism)’를 고백하는 내용이 아니며, 오늘날 현대 SDA가 정의하는 삼위일체 신학과도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정통 삼위일체와 현대 SDA의 삼위일체는 모두 세 신적 인격을 “한 하나님”, 즉 세 인격의 ‘일치(unity)’로 수렴시키는 반면, 1931년 진술서는 ‘한 하나님’을 그러한 방식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1936년 안식일학교 교과(4분기)를 보면, 교회는 여전히 예수께서 성육신 이전에 아버지에게서 난(자연적/존재론적) 아들이시며,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으로 정의되는 비삼위일체적 이해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적 용어의 삽입은 이후 전개될 변화의 분명한 신호였다. 재림교회 신학의 이동은 이미 시작되었다.

존경받는 재림교회 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르로이 프룸(Le Roy Froom)은, 나중에 아무도 항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광범위한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교회 대다수가 이 조치를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 왓슨 회장은 이를 알고 있었으나, 공식적인 조치를 취하려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이 신앙 진술서는 총회(GC)의 승인으로 추가된 것이 아니라, “묵시적 합의(common consent)”에 의해 “이의 제기 없이 수용되었다.” — (르로이 프룸, 『Movement of Destiny』, p. 414)

1942년 — 1931년과 동일. 예수는 영원하신 아버지의 아들로 이해되며, 공동-동등(co-equal), 공동-영원(co-eternal)이라는 표현은 사용되지 않았다. 즉, 본격적인 삼위일체 교리는 아님.

1955년 — 1931년과 1942년과 동일. 성령은 신격의 제3위로 표기되었으나, 제1위·제2위라는 구분은 없었고,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1981년 — 비(非)낳아짐(unbegotten) 신학과 성령의 분리되고 개별적인 인격성이 마침내 전면적으로 공식 채택되었다. 이제 “한 하나님”은 “아버지, 아들, 성령—세 위격의 공동-영원한 일치(unity of three coeternal Persons)”로 정의된다. (※ 현재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28개 기본 신앙 참조)

연감(Yearbooks)

1872년 원본 기본 원칙(Fundamental Principles); 미시간주 배틀크릭(Battle Creek)에서 소책자로 출판됨.
1889년 원본 SDA 연감 (기본 원칙은 147–151쪽에 수록)
1905년 원본 SDA 연감 (기본 신앙은 188–192쪽).
1909년 원본 SDA 연감 (기본 신앙은 220–224쪽).
1913년 원본 SDA 연감 (기본 신앙은 281–285쪽).
1914년 원본 SDA 연감 (기본 신앙은 293–297쪽).
1931년 원본 SDA 연감 (기본 신앙은 377–380쪽).
1942년 원본 SDA 연감 (기본 신앙은 4–6쪽).
1955년 원본 SDA 연감 (기본 신앙은 4–5쪽).
1981년 원본 SDA 연감 (기본 신앙은 5–7쪽).
SDA 연감 전체 아카이브

지금까지 제시된 증거들은, 과거의 어느 특정 시점을 가리켜 “그때는 개척자들이 모두 완벽하게 옳았다”고 단정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증거들이 분명히 시사하는 바는, 개척자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인격성(곧 하나님에 대한 교리)에 대해 명확하게 확립된 관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관점이 교회의 ‘기본 원칙(Fundamental Principles)’ 속에 분명히 표현되어 있었고, 그들이 수십 년 동안 이를 유지해 왔다는 사실이다. 주님의 종은 우리에게 이렇게 상기시킨다. “우리가 백성에게 동일한 기별을 전하되, 그 기별은 강화되고 확장되어야 한다.”

그들이 믿었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성경의 유일하신 참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며, 그분은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아버지이시다. (삼위가 공동-영원한 인격으로 이루어진 ‘일치체’로 정의된 하나님이 아님).

2.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자연적·문자적·존재론적 아들로서, 동정녀 탄생으로 아들이 되기 이전에, 아버지의 본체의 형상으로 낳아지신 분이시다 (오늘날 일부 현대 SDA가 주장하듯, 단지 성육신의 관점에서만 아들이거나, 비유적·언약적·구원론적 의미에서만 아들로 불리는 존재가 아님).

3.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자 아들의 영이다 (오늘날 현대 SDA가 믿는 것처럼, 완전히 분리된 독립적 개인이 아님).

그 밖에도, 재림교 신자들 사이에서 만장일치로 받아들여졌던 중요한 이정표들에는 다음과 같은 교리들이 포함된다.

율법의 영속성(특히 제4계명, 제7일 안식일), 성소의 정결—2300일의 종결, 악인의 불멸 부정, 성경의 권위, 예수님의 재림, 천년기, 악인의 심판, 죽은 자의 부활, 세 천사의 기별 등이다. 모든 자료는, 엘렌 화잇이 생존해 있던 시기 동안 이것이 교회의 거의 만장일치적 입장이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리고 적어도 1930년대 중반까지 이 입장은 규범적(normative) 입장으로 여겨졌다. 비록 1890년대부터 교회의 주요 출판물들에서 삼위일체적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다시 말해, 모든 개척자들이 신앙의 모든 세부 사항을 완벽하게 조화시켰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신앙의 보다 넓은 핵심 교리들, 곧 당시 교회의 ‘기본 원칙’에 표현된 근본적 토대는 견고하게 세워졌으며, 주님의 기별자에 의해 강력하게 지지되었다. 그리고 그 구조는 가르침에 있어 분명히 비(非)삼위일체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대 재림교는, 그 기초 위에 ‘건축하는 대신’, 이미 존재하던 것을 다시 쓰고, 약화시키며, 뿌리째 제거했고, 이전의 입장을 오류이자 이단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다음과 같은 증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더 이상 계시될 진리가 없으며, 우리가 해 온 모든 성경 해석이 오류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정당화될 수 없다. 어떤 교리들이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백성 가운데 진리로 받아들여져 왔다는 사실은, 우리의 생각이 무오하다는 증거가 아니다. 세월은 오류를 진리로 만들지 못하며, 진리는 공정한 조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참된 교리는 면밀한 조사로 인해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우리는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으며, 진리라고 주장되는 모든 것을 철저히 살피지 않고 받아들여서도 안 되지만,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을 보이는 것은 어떤 것이든 거부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가르침을 받을 줄 알고, 온유하며,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을 반대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그리스도를 거부했던 유대 민족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영원한 이익을 위태롭게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견해들이 시험을 받도록 계획하셨는데, 이는 우리가 살아 있는 말씀을 면밀히 조사하여 우리가 믿음 안에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 {RH December 20, 1892, par. 1}

엘렌 화잇은 하나님 인격성에 대한 이해를 바꿨는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엘렌 화잇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인격성에 대한 견해를 바꾸었거나 성숙시켰으며, 그 결과 『시대의 소망(The Desire of Ages, 1898)』을 통해 삼위일체론자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다루기 전에, 그녀 자신이 자신의 믿음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했는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내가 믿음에서 떠나 표류하며 닻 없는 상태에 빠진 자들에 의해 우리 신앙의 바로 그 기초들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침묵한다면, 나는 충성되지 못한 파수꾼이 될 것이다. 이처럼 거짓 교리들이 가르쳐지고 있는 이 시기에,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가르쳐 온 바로 그 동일한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 나는 내 믿음을 한 획도, 한 점도 바꾸지 않았다. 나는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데, 그대들 두 사람 모두가 충성과 불충성의 차이를 분명히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모든 의사와 모든 목회자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다.” —  {Lt150-1906.9}
“몇 달 전에 내게 빛이 임하여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 가운데 한 무리가 함께 기도하고 있었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임했다. 만일 어떤 이들이 성소에서 벗어나게 하는 성령에 대한 현대적 사상들을 가지고 온다면,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올바른 위치에 서 있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이 진리는 우리에게 한 점 한 점 주어졌다. 만일 우리가 우리 신앙의 어떤 한 조각이라도 제거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모래 위에 서는 것이 된다. 우리가 말씀 위에 서 있다면 아무도 우리를 흔들 수 없는데, 이는 말씀이 반석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이 하나님께서 결코 주신 적 없는 이론들을 제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리의 기둥으로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면, 우리는 떠밀려 가지 않을 것이다. 그분은 금과 은과 보석의 기초이시기 때문이다. - {20LtMs, Ms 186, 1905, par. 13}
“내게 주어진 말씀은, 살아 있는 자들 가운데서 죽은 자들의 증언을 다시 소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온갖 종류의 오류들이 들여와질 것이나, 그것들이 확립될 때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 안에는 더 이상의 진리가 없다. 우리는 사람이 들여오는 어떤 궤변에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성도들에게 한 번 전달된 진리(the truth once delivered to the saints)가 필요하다—죽은 자들의 증언이 다시 살아나야 한다. 우리는 성령께서 이러한 것들을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내가 무엇을 믿는지, 그리고 나의 소망의 기초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나는 지난 50년 동안 서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다. 나는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진리가 필요한 자들에게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자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마음속 깊은 곳에 진리를 가지기를 원한다.” — {20LtMs, Ms 186, 1905, par. 14}
“나는 지난 50년 동안 성령께서 내게 주신 그대로의 진리, 그 한 획 한 점까지도 소중히 여긴다. 나는 모든 사람이 알기를 원하는데, 나는 반세기 이상 우리가 유지해 온 바로 그 진리의 단 위에 서 있다. 이것이 내가 78세가 되는 이 날에 증언하고자 하는 바이다.” — {Ms142-1905.6}

주목할 점은 연도이다. 이 진술들은 1905–1906년에 기록되었으며, 이는 『시대의 소망』이 출판된 지 8년이 지난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렌 화잇은 1906년에 분명히 말하기를, 자신은 지난 반세기 동안 “한 획도, 한 점도” 믿음을 바꾸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는 엘렌 화잇 스스로가 자신의 신앙이 『시대의 소망』을 기점으로 변화되었다는 주장, 혹은 삼위일체론으로의 신학적 전환이 있었다는 주장을 명시적으로 부정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옹호함

오늘날의 삼위일체적 재림교인들이, 개척자들의 비(非)삼위일체적 입장에 대해 제기하는 주요 비판 가운데 하나는, 예수께서 성육신 이전에 문자적으로 낳아진 아들이라면 그리스도의 신성이 훼손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일부 자료에 따르면, 당시 교회 역시 유사한 반론들에 직면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1883년 『리뷰 앤 헤럴드(Review and Herald)』에 실린, 교회의 대표적 간행물 중 하나의 「성경 질문(Scripture Question)」– 「논평(Commentary)」란에서 발견되는 한 질의응답이다.

질문:
그리스도께서 피조물이라고 분명히 말하는 성경 구절들을 제시해 주실 수 있습니까?

답변:
그대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이 그리스도께서 언제라도 피조되었다고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오해하고 있다. 그들은 오히려 그분이 아버지에게서 “낳아지셨다(begotten)”고 믿으며, 그분을 정당하게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고 그렇게 경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세계들과 존재하는 모든 것이 아버지와 더불어 그리스도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은 영원의 과거 어느 시점에 그리스도께서 존재하게 된 지점이 있었다고 믿는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게서 낳아질 수 있고, 아들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존재의 차원에서 그리스도보다 앞서 계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의 구별된 인격성을 유지하며,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이 세 인격이면서 동시에 한 인격이라고 주장하는 삼위일체의 그 특징을 불합리한 것으로 거부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이 하나 되기를 기도하신 의미에서 하나라고 믿는다. 즉, 영과 목적과 사역에 있어 하나라는 뜻이다.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의 기본 원칙(Fundamental Principles of S. D. Adventists)』을 참조하라. (W. H. 리틀존, 「논평—성경 질문」, 『Review & Herald』, 1883년 4월 17일, p.250)

다음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관련하여, 재림교 개척자들의 견해를 다룬 보다 현대의 한 학위 논문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이 시기(1881년까지)의 다른 재림교 저술가들을 조사해 보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삼위일체를 거부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와 동일한 만장일치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옹호했다. 삼위일체를 거부한다고 해서 반드시 구주로부터 그분의 신성을 박탈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어떤 재림교 저술가들은 오히려 삼위일체론자들이 그리스도의 신적 본성을 격하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 러셀 홀트(Russell Holt),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내 삼위일체 교리—그 거부와 수용」, 1969년, 머빈 맥스웰 박사 지도 하에 제출된 학기말 논문

러셀 홀트가 말한 “한 사람도 예외 없이”라는 표현은, 그의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즉, 1881년까지)의 재림교인들이 만장일치로 삼위일체를 거부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초기 재림교 개척자들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분명히 옹호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초기 재림교회는 이 두 지점—삼위일체 거부와 그리스도의 신성 옹호—에 있어 하나로 연합되어 있었다.

이 점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기독교인들, 그리고 오늘날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조차도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것은 곧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림교회의 개척자들은 오히려 삼위일체론자들이 그리스도의 신적 본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삼위일체론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실제적이고 참된 신성을 빼앗고 있다고 보았다.

유니테리언(Unitarians)은 예수께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피조된 존재라고 믿었다. 이러한 견해는 일반적으로 아리우스주의(Arianism)로 간주되지만, 실제로 아리우스가 무엇을 믿고 가르쳤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초기 재림교인들은 예수께서 창조되었다고 믿지 않았으며, 유니테리언주의를 강력히 반대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대신, 예수께서 성육신 이전에,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낳아지신 분’(후손·출생의 의미에서)이며,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나오신 존재이기에,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기에 합당하다고 믿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삼위일체의 신비주의적 가르침은 거부했지만, 그리스도의 신성은 단호하게 옹호했다.

“하나님을 셋이면서 하나, 하나이면서 셋이라고 만드는 설명할 수 없는 삼위일체 교리도 문제이지만, 그리스도를 아버지보다 열등한 존재로 만드는 극단적 유니테리언주의는 그보다 더 나쁘다. 하나님께서 열등한 존재에게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셨겠는가?” — 제임스 화잇, 『Review & Herald』, 1877년 11월 29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유니테리언들보다는, 아들을 영원한 아버지와 동일시하고, ‘셋이면서 하나인 하나님’에 대해 안개처럼 모호하게 말하는 삼위일체론자들에게도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다. 성경이 그분에게 입혀 주는 모든 신성을 주님께 돌려드리라.” — 제임스 화잇, 『Review & Herald』, 1871년 6월 6일 (제임스 & 엘렌 화잇 서부 순회 사역 중)

이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초기 개척자들이 무엇을 기록했는지 조금 더 살펴보자. 1878년, 『Review and Herald』의 한 독자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유니테리언인지, 삼위일체론자인지를 질문했고, 이에 대한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둘 다 아니다. 우리는 삼위일체론자들이 말하는 ‘셋이면서 하나인 하나님’을 믿지도 않으며, 유니테리언들이 주장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낮은 견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단지 사명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그분의 존재 자체에 있어서도 신적 존재이심을 믿는다.” — 『Review and Herald』, 1878년 6월 27일, “To Correspondents”

다음은 또 다른 주요 개척자 중 한 명인 J. H. 와그너(E. J. 와그너의 부친)의 진술이다.

“많은 신학자들은 속죄의 존엄성과 효력이 삼위일체 교리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둘 사이에 어떤 연관성도 보지 못한다. 오히려 그 교리를 옹호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피하려고 하는 바로 그 어려움에 빠진다. 그들의 어려움은 이것이다.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것을 곧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것과 동일시한다는 점이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삼위일체 교리를 굳게 붙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에 관해 우리가 쓴 글을 읽어본 사람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확고히 믿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삼위일체론자들이 주장하는 방식의 삼위일체 개념을 받아들일 수 없는데, 그 이유는 그렇게 할 경우 우리 구속을 위해 이루어진 희생의 존엄성에 대한 이해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 J. H. 와그너, 『자연과 계시에 비추어 본 속죄(The Atonement in the Light of Nature and Revelation)』, 1884년판, 「삼위일체 교리는 속죄를 무너뜨린다」 장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문제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곧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매우 중대한 사안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초기 재림교인들은 속죄의 존엄성(dignity of the Atonement)이 걸려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훼손한다는 것은 곧 갈보리에서의 그리스도의 희생 자체를 훼손하는 것을 의미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실제로 죽으신 것인가, 아니면 삼위일체는 하늘에 그대로 남아 있고 인간적 외형만 죽은 것인가? 더 나아가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한 위격조차 죽을 수 없다면, 십자가에서 과연 무엇이 희생되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다음 인용문에서는, 두 명의 재림교인이 회중교회(Congregationalist) 소속 부부와 대화하던 중,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질문을 던진다. “당신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습니까?”

그때 두 번째 재림교인이 대화에 참여하여 이렇게 답했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신적 존재이심을 믿습니다. 그분 안에 ‘신격의 충만함이 육체로 거하신다’고 믿으며, 그분은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요, ‘그의 본체의 형상’이시며,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고 계신 분’이십니다.’” — 『Review & Herald』, 1867년 6월 25일 (존스턴 형제, 유라이어 스미스에게 보낸 편지)

다른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재림교인들이 삼위일체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니테리언이나 여호와의 증인처럼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다음 인용문은 그러한 질문에 대해 『Review and Herald』로 보내진 질의에 대한 공식 답변이다.

“A.S.에게. 당신의 말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우리 신앙을 알고 있다면, 그들은 사실을 알고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며, 만일 알지 못한다면,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악하게 말하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 『Review & Herald』, 1868년 7월 14일

이 답변을 통해 우리는, 초기 재림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당시에는 잘 알려져 있었어야 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시대에 우리 신앙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던 사람이라면, 재림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는다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 없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음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옹호하는 또 하나의 진술이다. 여기서도 보듯이, 그리스도의 아들됨에 대한 독특한 교리적 입장 때문에, 초기 교회는 왜곡과 적대적 비난(vitriol)에 지속적으로 시달렸다.

“이 지역에서의 관심은 처음부터 특이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특정한 진영으로부터 오는 강한 편견과 적대감, 그리고 왜곡된 주장에 맞서 일해야 했다. 적어도 한 명의 저명한 목회자는 인근 여러 도시의 대규모 회중 앞에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이 매우 위험한 부류의 사람들이며, 위선자들이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않는 자들이라고 공공연히 선언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같은 말들이 이 도시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전해졌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한 이유를 들어 알고 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이 천막 집회를 매우 위험한 곳으로 여기게 되었다…” — G. I. 버틀러, 『Review and Herald』, 1894년 7월 17일, p.459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

1893년, 교회가 여전히 비삼위일체적·‘낳아진 아들’ 신학을 유지하고 있던 시점에서도, 엘렌 화잇은 지상에 재림교인보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더 굳게 믿는 백성은 없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헤이스팅스에서 네 마일 떨어진 한 마을의 회관을 사용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우리 일꾼들이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학교 교사가 진리를 반대하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않는다고 주민들에게 말했기 때문에 회관을 얻는 데 실패했다. 이 사람은 이 점에 대해 우리 신앙을 알지 못했을 수도 있으나, 그대로 방치되지는 않았다. 그는 지상에 그리스도의 선재하심(pre-existence)의 진리를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보다 더 굳게 붙드는 백성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 사회 안에 재림교 교리가 전파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답변이 나왔고, 결국 문은 닫혔다.” — 『Review & Herald』, 1893년 12월 5일, 문단 5

1871년, 엘렌 화잇은 남편과 함께 기차에 앉아 있었고, 그 자리에서 제임스 화잇은 왜 그들이 삼위일체를 거부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신성은 믿는지를 설명했다.

“이 선교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매우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우리[제임스와 엘렌 화잇]에게 삼위일체에 대해 캐묻고, 우리가 그의 삼위적 하나님에 대해 건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는 그리스도로부터 신성을 빼앗아 단지 한 인간으로 만드는 유니테리언주의를 강하게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의 견해에 관한 한, 그는 허수아비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셈이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높이는 성경의 모든 강력한 표현들에 온전히 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는 말씀 가운데서 여호와께서 직접 말씀하신 신적 존재이심을 믿는다. 그분은 세상이 있기 전에 아버지와 함께 계셨다. 그는 하나님에게서 나오셨고,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간다’고 하셨다. 사도는, 우리 중보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지금 어떠한 분이신지를 말하면서, 우리의 본성을 벗어버리신 분으로 언급한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우리는 아버지 앞에서 대언자를 두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 제임스 화잇, 『Review & Herald』, 1871년 6월 6일
“성경의 단순한 언어는 아버지와 아들을 두 분의 구별된 인격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아버지와 아들에 대해 말하는 성경의 언어는 의미와 힘을 갖는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그 영원하신 하나님’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자기 자신의 아들이자 자기 자신의 아버지가 되고, 자기 자신에게서 나와 자기 자신에게로 간 존재가 된다. 그리고 하늘이 만물 회복의 때까지 받아 두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를 아버지께서 보내신다고 할 때, 그것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 곧 영원한 아버지가 자기 자신을 보내는 것이 될 뿐이다.” — 같은 글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유니테리언들보다, 아들을 영원한 아버지와 동일시하며 ‘셋이면서 하나인 하나님’에 대해 안개처럼 모호하게 말하는 삼위일체론자들에게도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다. 성경이 그분에게 입혀 주는 모든 신성을 주님께 돌려드리라.” — 같은 글

이 인용문들에서 보듯이, 재림교인들은 성경의 표현에 스스로를 제한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높이는 성경의 모든 강력한 표현들에 온전한 가치를 부여했으며, 성경이 그분에게 입혀 준 모든 신성을 그리스도께 돌려드렸다. 이는 재림교인들이, 그 결과가 비인기적인 교리를 낳는다 할지라도, 성경을 따르려는 태도를 기꺼이 취했음을 보여 준다.

오늘날 대부분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전 ‘낳아진 아들됨(begottenism)’을 부정하지만, 당시 교회가 그리스도의 아들됨에 관해 가졌던 합의된 입장—곧 그리스도의 신성을 확언하면서도 비삼위일체적이었던 이해—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다음의 진술 역시 그러한 신학적 틀 안에서 이해되었을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영원하신 아버지, 변함없으신 분께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다. 곧 그의 품에서 그의 본체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이를 떼어 내어, 인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드러내기 위해 땅으로 보내셨다. 그분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행하실 의향이 있으시다. 한 영감받은 저자는 모든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야 할 질문을 던진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 엘렌 G. 화잇, 『Review & Herald』, 1895년 7월 9일, 문단 13

개척자들은 아리우스주의자(Arians) 또는 반(半)아리우스주의자(Semi-Arians)였는가?

앞서 언급했듯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자체 역사학자들은 교회의 창립 개척자들을 주로 “비(非)삼위일체론자(non-trinitarians)”로 규정해 왔다. 더 나아가, 그들은 개척자들을 아리우스주의자 또는 반아리우스주의자로 분류해 왔다. 또한 일부 역사학자들은 아리우스주의 또는 반아리우스주의라는 라벨을 ‘그리스도가 피조물이라고 믿는 견해’와 동일시해 왔다.

“우리의 개척자들은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해 분명히 아리우스적 혹은 반아리우스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골 1:15)와 ‘독생자’(요 3:16)를 문자적으로 이해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먼저 계셨고 더 우월하며, 영원의 어느 시점에 시작을 가진 아들은 아버지께 종속된 존재였다. 이 견해의 귀결로, 성령은 인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향력 혹은 능력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 게르하르트 판들(Gerhard Pfandl), 성경연구소(Biblical Research Institute),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내 삼위일체 교리」, 『Journal of the Adventist Theological Society』 17/1 (2006년 봄): 160–179
“재림교회의 신앙은 ‘현재의 진리(present truth)’의 영향 아래 수년에 걸쳐 변화해 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 곧 우리의 구주요 주님에 관한 가르침이다. 제임스 화잇, J. N. 앤드류스, 유라이어 스미스, J. H. 와그너를 포함한 많은 개척자들은 아리우스적 혹은 반아리우스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아들이 이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 어떤 시점에서 아버지로부터 나왔다는 견해였다. …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의 기본 신앙에 포함된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는 초기 재림교인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일부 있다.” — 윌리엄 존슨(William Johnsson), 「Present Truth: Walking in God’s Light」, 『Adventist Review』, 1994년 1월 6일, p.10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이다. 그들은 정말 아리우스주의자/반아리우스주의자였는가? 그들이 그리스도를 피조된 존재로 믿었는가? 아니면 성경이 말하는 참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아리우스’라는 용어는 로마(가톨릭 교회)에 의해 낙인(stigma)으로 사용되었다. 이 낙인은 로마와 (특히 삼위일체 교리라는 교의) 에 동의하지 않는 누구에게나 적용되었다. 그것은 신학적 비하 표현과도 같았으며, 실제로 강한 부정적 뉘앙스와 현실적 결과를 동반했다. 역사는 로마에 반대했던 이들이 이단으로 규정되어 박해를 받았음을 보여 준다. 주목할 점은, 오늘날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삼위일체 교리를 옹호하면서, 그에 반대하는 이들을 아리우스주의자 혹은 반아리우스주의자로 낙인찍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로마 교황권과 다르지 않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주장이다.

사실, 재림교회 개척자들이 아리우스주의 또는 반아리우스주의와 유사해 보이는 요소들을 가진 신념을 지녔던 것은 맞다. 그러나 면밀히 살펴보면, 그들의 견해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묘사되는 아리우스주의/반아리우스주의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개척자들의 신념을 아리우스적이라고 규정하는 오해는, 비삼위일체론에 대한 재림교 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의 편향과, 그들이 교회의 과거를 이단적이라고 간주하여 거리두기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비삼위일체 재림교인들이 아리우스주의자로 규정되고, 동시에 그리스도를 피조물로 격하한다고 비난받는 주된 이유이다.